"애들 없었으면 진작 죽었죠. 신천 다리 밑에서 박스를 덮고 노숙할 지경까지 갔으니까요."
정순남(가명'50) 씨는 살아오면서 죽으려고 결심한 적이 많았다. 사업을 하다 정 씨 앞으로 빚 10억원만 남기고 사라진 전 남편에 대한 원망과 평생 모은 재산을 정 씨에게 빌려준 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다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두 아이 때문이다. 특히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생각하면 몸이 아파도 다시 일어서게 된다.
"딸은 엇나가지 않고 잘 자라줬고 아들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대학교까지 진학해서 정말 고맙죠. 하지만 형편 때문에 딸이 대학을 휴학하고, 아들도 건강 문제로 학교를 쉬게 되니 마음이 너무 아파요."
◆빚만 남기고 떠난 남편
중매로 만난 정 씨의 남편은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 정리해고를 당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라 막막했던 차에 남편은 폐기물 처리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 큰돈이 들었던 사업 때문에 남편은 정 씨 명의로 대출을 받았다. 심지어 정 씨 친정어머니 앞으로 있던 집과 땅까지 담보 잡아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남편이 무조건 대박 나는 사업이라면서 돈을 마련해 달라기에 친정어머니가 오빠 몰래 빌려준 돈이었어요. 저도 남편 말만 믿고 금융권 대출과 카드빚까지 냈는데…."
하지만 남편의 사업은 IMF로 직격탄을 맞았다. 남편은 고스란히 채무로 돌아온 사업과 불안에 떨고 있는 가족을 버려두고 혼자서 사라져 버렸다.
정 씨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매일같이 빚 독촉에 시달렸다. 남편이 사라진 집에는 빨간 압류딱지가 붙었고, 정 씨와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 유치원생이었던 아들은 옷가지만 챙겨서 집을 나와야 했다. 어머니가 평생 모은 재산인 집과 땅은 경매에 부쳐졌다.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병원에 입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나 때문에 돌아가신 것 같아 너무 힘이 들었죠. 남편은 말도 없이 사라져서 기댈 곳도 하나 없는 처지라 죽으려고 수십 번도 넘게 결심했어요."
돌아갈 친정도 없어지고 기댈 남편도 없었다. 심지어 시댁은 크게 성공할 남편의 앞길을 막았다며 정 씨를 죄인 취급하기까지 했다. 결국 갈 곳이 없는 아이들과 정 씨는 신천 다리 밑으로 향했다. 종이상자를 주워 덮고 자는 노숙생활을 한 것이다. 일주일 동안 다리 밑에서 생활하던 정 씨 가족은 시내버스 차고지 옆 작은 방에서 잡일을 해주며 얹혀살게 됐다.
정 씨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화장품 외판원, 보험판매사, 요구르트 판매원 등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했다. 하지만 빚 때문에 월급은 가압류당하고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말로 할 수 없이 힘들었죠.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입술을 깨물고 일을 했어요."
◆비만과 당뇨로 10년도 못 산다는 아들
아이들을 위해 살던 정 씨에게 또 한 번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또래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말을 어눌하게 하는 등 지적장애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은 자주 길을 잃고 돌아다니거나 집에 불을 내는 등 엄마와 누나의 24시간 보살핌이 절실했다. 최악의 상황에도 정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딸과 함께 지적장애 아들의 공부를 시켰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사용하는 법도 가르쳤고, 특례입학이지만 대학교까지 진학시켰다.
정 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아들과 함께 매일같이 대학에 등교했다. 수업시간에 맞춰 강의실에 아들을 데려다 주고 점심시간에는 밥을 챙겨 먹이며 틈틈이 학교 식당에서 잡일을 하며 조금씩 돈을 벌었다.
하지만 당뇨가 심해진 아들은 2학년을 마치고 휴학해야만 했다. 게다가 올 4월부터 정 씨가 조리사 보조로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아들의 건강은 더욱 나빠졌다. 혼자 두고 가기만 하면 식이 조절이 되지 않는 아들은 자꾸만 라면을 끓여 먹었고, 몸무게가 120㎏을 넘어서 당뇨가 더욱 심해지고 고지혈증과 지방간까지 앓게 됐다. 정 씨는 병원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전해들었다. 지금 상태라면 아들의 수명이 10년도 가지 못한다는 것.
당장 비만을 해결하지 않으면 각종 합병증이 이어지기 때문에 아들은 결국 위에 밴드를 묶어 식사량을 조절하는 위밴드 수술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파산 신청으로 채무는 대부분 해결됐지만 여전히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세를 면치 못하는 형편에 1천만원에 달하는 수술비 때문에 정 씨는 걱정부터 앞선다. 대학에 다니던 딸도 생계 걱정에 휴학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저에겐 아이들만이 희망인데 딸에게는 부담을 주고 아들은 제대로 챙겨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딸이 행복하게 살고 아들이 혼자서도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제 꿈이에요. 아들이 건강해져서 부디 다시 학교에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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