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칼리프

1258년 2월 칭기즈칸의 손자 흘레구가 이끄는 30만 몽골군이 이슬람 세력의 심장이던 바그다드에 들이닥쳤다. 당시 바그다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가 통치하고 있었다. 칼리프는'신의 사도인 무함마드의 대리인'이라는 뜻이다.

흘레구는 정복에 앞서 칼리프에게 항복하라는 최후통첩을 냈다. 그러나 칼리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알라신이 구해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칼리프의 이 믿음은 몽골군의 힘에 여지없이 짓밟혔다. 몽골군은 피의 보복을 했다. 훌레구는 최후통첩에서 "우리는 눈물이나 후회 따위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집단"이라고 했다. 20만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칼리프 자신도 융단에 둘둘 말린 채 말발굽에 짓밟혀 최후를 맞았다.

칼리프의 최후는 아바스 왕조의 최후였고, 중세 이슬람 제국의 최후였다. 632년 예언자 무함마드의 뒤를 이어 이슬람 공동체를 다스리는 이슬람 제국의 최고 통치자로 등장했던 칼리프는 이후 유명무실해졌다. 이슬람 문화권의 정신적 중심이던 바그다드도 세계사의 중심에서 멀어져갔다. 칼리프를 내세운 왕조가 간헐적으로 등장했지만 이름뿐이었다. 1924년 터키 초대 대통령 케말 파샤에 의해 이슬람 칼리프제는 공식 종언을 고했다.

역사에서 사라졌던 칼리프가 다시 부활을 외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이라크 동쪽 디얄라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면서다. 이 단체는 바그다드로 진격하며 이슬람 국가 '칼리페이트' 수립을 선언했다. 칼리페이트엔 과거 칼리프가 통치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들은 과거 이슬람 초기 칼리프 시대처럼 지중해 연안부터 걸프지역을 아우르는 범 이슬람 국가 수립을 목표로 내걸었다. 새 칼리프엔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지명됐다. 빈 라덴 사망 후 알 카에다에서 떨어져 나온 지도자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칼리프가 다스리는 나라'가 올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극단적인 잔인함이 걸린다. 바그다드로 진격하는 과정에서 점령한 도시에선 자신들과 종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많은 살육을 감행했다. 민심을 얻기는커녕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민심을 얻지 못하면 그들이 내세우는 '알라신'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칼리프는 부활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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