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하수도에서 배워야 할 국가 개조

뇌물과 선물은 어떻게 다를까. 런던의 '기업윤리연구소'(Institute of Business Ethics'IBE)가 정의한 것을 보면 재미있다. '받고 잠이 잘 오지 않으면 뇌물, 잘 자면 선물이다. 언론에 보도돼 문제가 되는 것은 뇌물, 문제가 안 되는 것은 선물, 자리가 바뀌면 못 받는 것은 뇌물이고 바뀌어도 받을 수 있는 것은 선물이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참 순진한 정의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정치인과 '관피아'가 들으면 코웃음 칠 법하다. 거액을 받고도 다리 쭉 뻗고 잘 자고, 세상이 떠들썩해도 대가성이 없으면 무죄방면이오, 아무리 자리가 바뀌어도 '관리 차원'에서라도 뇌물이 끊기지 않는 구조인데 뭔 소릴. 어디 공직만 그런가. 기업 등 민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상한 사례 하나 들어보자. 싱가포르에는 모기가 없다고 한다. 덥고 습한 아열대 지역에서 모기가 없기야 하겠느냐마는 그만큼 모기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소리다. 이유는 뭘까. 하수도의 기울기 때문이란다. 더러운 물이 고이지 않도록 하수도를 만들어 서식 환경을 아예 봉쇄한다는 것이다. 건설업자는 똑같은 틀을 만들어 하수도를 좍 놓으면 손쉽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하수도 규정은 그렇지 않다. 물이 고이는 하수도는 퇴짜다. 우리 식대로 쉽게 공사를 하려면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공무원에게 뇌물을 먹여야 한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원칙대로 공사하니까 모기가 없다는 결론이다.

요즘 '국가 개조'가 화두다. 세월호 참사로 분출된 국민적 분노에 등 떠밀려 정부가 국가 개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하지만, 두차례의 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가 초를 치면서 하는 둥 마는 둥 엉거주춤한 상태다. 하지만 국가 개조는 더 이상 하고 말고 할 선택이 아니라 국가 생존의 문제라는데 이견이 없다. 거창한 구호처럼 들리지만 국가 개조의 핵심은 '패러다임의 변화'다. 이제껏 해온 방식이 아니라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부패의 고리를 끊어내고 빈부 격차를 줄이며 가진 것 없는 사람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개조된 국가다. 그것도 천천히가 아니라 이른 시일 내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 지도자가 가장 먼저 결단해야 한다. 내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천박한 의식과 잘못된 관행, 허점투성이의 시스템에 대해 단호히 "NO"라고 말해야 한다. 공직자는 수범(垂範)해야 하고 국민도 시민의식을 더 키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김영란법)은 국가 개조의 출발이다. 그런데 국회는 하자세월이다. 싱가포르는 1960년 '부패방지법'을 만들고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세우는 등 청렴 국가에서 국가비전을 찾았다. 이후 여러 차례 법을 개정했는데 1963년 뇌물을 받지 않더라도 받을 의도가 있거나 그에 준하는 처신을 해도 범죄가 성립되도록 강화했다. 1981년 개정 때는 뇌물 수수자에 대해 형사적 처벌과 별도로 뇌물 전액을 환수하고 반환능력이 없을 때는 그 액수에 따라 징역을 더 부과시켰다. '아테네 이후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 건설'로 평가받는 싱가포르의 부흥은 그저 주어진 게 아니다. 부패척결에 대한 정치 지도자들의 강한 의지, 계속 손질해 실효성을 높인 부패방지법이 밑천이었다.

1965년 8월 9일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싱가포르 독립선언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존중하는 나, 총리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민과 정부를 대표해 오늘 싱가포르가 자유와 정의, 국민의 안녕과 행복, 평등을 지향하는 독립된 민주국가가 되었음을 만방에 선포합니다." 단순하지만 명료한 메시지다. 모름지기 국가 지도자라면 어떤 결의와 각오를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우리 정치 지도자들도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국가를 만들기 위해 지금 선언해야 한다. 권력을 쥐기 위해 몸부림 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 김영란법 하나 만들면서 대가성 여부 따지고 이해충돌이니 형평성 운운하며 힘 뺄 때가 아니다. 머리 떼고 꼬리 자르는 그런 누더기법을 만든들 무슨 소용인가. 차라리 "김영란법은 곤란하다"고 말하는 정치인이 더 솔직하다. 국가 개조 전에 먼저 정치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개조해야 한다. 이반한 민심의 칼끝 앞에 서고야 정신 차릴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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