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이 있는 사람은 얼굴에 빛이 난다. 박언휘(56) 종합내과 원장도 그런 사람이다. 전업은 의사지만 부업(?)은 따로 있다. 주말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환자들을 찾아 진료하고 있다. 박 원장은 "(봉사를) 안 하면 더 불편하다. 중독 같은 것"이라며 자신이 하는 일이 거창하지 않다고 말을 아낀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시작보다 어려운 것은 지속이다. 10년 넘게 찾아가는 장애인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박 원장을 그가 일하는 병원에서 만났다.
◆환자를 찾아가는 의사
요즘 박 원장은 주말마다 장애인 환자들을 찾아간다. 예전에는 지체 장애인들을 주로 찾아갔지만 요즘에는 혼자 병원에 오기 힘든 시각 장애인 환자들의 집을 찾는다. 동정에서 출발한 봉사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1990년대 후반 교회를 빌려서 무료 진료를 할 때 만난 한 할머니 환자는 그의 봉사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실 때마다 진료는 안 받고 항생제만 받아가는 할머니가 계셨는데 알고 보니 장애가 있는 아들 대신 약을 받으러 오신 거였어요. 할머니 댁이 3층 건물 옥상이었는데 그곳에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이 혼자 있었고, 병원을 제때 못 가서 다리에 괴사가 진행 중이었어요." 이때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된 장애인 환자의 열악한 상황을 처음 목격했다. 그리고 의료 봉사의 방향을 다시 잡았다.
그는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 진짜 봉사라고 생각한다. 봉사자가 주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라 자기만족이다. 박 원장은 교통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환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양쪽 다리도 잃은 그 환자는 항상 집에만 있었다. "밖에 나갈 수 없으니까 항상 밥을 배달시켜 먹었고, 상한 음식을 계속 먹어서 건강 상태가 엉망이었어요. 항상 '사람이 보고싶다'고 말하는 환자였는데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니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지체장애인협회의 도움으로 이 환자의 소원은 이뤄졌다. 40명을 모아 동해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고, 바다를 보고 웃는 사람들을 보며 박 원장의 마음도 함께 웃었다.
◆어린 시절 꿈이 이끈 삶
박 원장의 고향은 울릉도다. 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울릉도에는 병원이 없었다. 방학이 지나면 같이 놀았던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박 원장은 "패혈증이나 골수염 등 조기에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친구들이 많이 죽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 역시 병치레가 잦은 소녀였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들은 미국에서 온 의료 선교사들이었다. 그는 "내가 자주 아팠기 때문에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선교사들을 보면서 의사의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인생에 시련도 있었다. 대구에 있는 의대에 진학하며 꿈을 이뤘지만 예과 시절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휴학해야 했다. 박 원장은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것이 너무 싫었다. 자살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세상이 싫었던 때였다"고 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한 교수님의 말 한마디였다. "교수님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신이 준 능력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릴 때 꿨던 꿈을 한순간에 잃고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봉사를 하다 보면 주변에서 여러 이야기를 듣는다. 어떤 사람들은 "나중에 정치하려는 것 아니냐"며 오해하기도 한다. 그는 주변 이야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주말에 운동할 시간도 없이 환자들을 찾아다니는 그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삶의 철학이 있다. "나누지 않으면 썩어요. 나눔은 흐르는 물 같아서 절대 썩지 않아요." 최근 박 원장은 작은 사고로 얼굴에 상처를 입었다. 이날 사진을 찍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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