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었는데 단 한 번에 마음을 빼앗긴 곡이 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가슴속 깊이 가라앉아 있던 까닭 모를 슬픔의 앙금들이 일렁이며 일어나는 듯했다. 불안과 허무, 지나온 삶의 자잘한 페이지들이 절실하게 음악에 투영되어 함께 다가왔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당히 슬프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 그 음악은 단숨에 나의 귀를 중독시켰다. 영화와 잘 어울렸던, 그 당시엔 이름도 생소했던 헝가리 출신 줄탄 코다이(1882~1967)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Op.8'은 그렇게 다가왔다. 1992년이었다.
지난해 여름, 한동안 잊고 지냈던 파리를 다시 찾았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던 첫날, 그 잿빛의 더럽고 냄새 나는 통로 끝에서 어느 악사의 연주가 울려 퍼졌던 순간 나는 '퐁네프의 연인들' 속 한 장면을 마음속에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 속 주인공이었던 미셸이 가슴 아프게 헤어진 연인 줄리앙의 첼로 소리에 이끌려 지하도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매던 장면에서 흘러나왔던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암울하고 어두웠던 여주인공이 필사적으로 첼로의 선율을 따라 뛰어가던 그 장면이 순간적으로 2013년 파리 지하철 역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헝가리 최고의 작곡가로 추앙받고 있기는 하지만 코다이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그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가 많은 이들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퐁네프의 연인들'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곡 자체의 매력도 넘쳐난다. 레퍼토리가 풍부하면서 순수하다. 풍부함은 연주자에게는 기교적 어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코다이는 음악학자로 더 유명한데 그의 첼로 소나타 또한 헝가리 민속 음악의 색채가 정교하게 가미되어 지적인 이해가 필요하며 연주가 다소 까다롭다.
같은 헝가리 출신인 야노스 스타커(1924~2013)의 연주로 들어본다. 이는 코다이의 첼로 소나타 연주 음반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다. 이 곡이 스타커의 연주 때문에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곡으로 부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기교상의 난점을 스타커는 완벽한 연주로 시원스레 풀어간다. 곡 중반 난해한 부분마저도 예리한 통찰력으로 스타커만의 느낌을 만들어 듣는 이에게 저항할 수 없는 설득력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심어준다. 거기에 스타커 특유의 격렬함을 넘어 거침없이 활달하게 내달리는 연주가 곡을 한층 매력적으로 만든다. 스타커는 그의 나이 15세 때 코다이 앞에서 처음 연주했고, 이후 꾸준히 코다이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코다이의 음악 세계를 자신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수록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변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또한 훌륭하다. 첼로 소나타 외에 예상하지 않았던 덤을 얻는 기분이다.
코다이의 음악을 사랑한다면 사치를 부려 하나쯤 가져도 좋을 것 같은 음반이다.
신동애
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 클럽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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