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부끄러운 자화상이 있다. 먼저 가겠다며 차 머리를 들이미는 얌체 운전자, 빨간불인데도 멈추지 않는 차들,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은 채 차로를 바꾸고 앞차가 느리다고 경적으로 위협하는 운전행태 등은 한국 교통문화의 치부다.
한국은 201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교통사고 사망자는 인구 100만명당 105명으로 31개 회원국 중 폴란드(109)명에 이어 2위다. 대구경북의 교통문화'안전은 국내에서도 중'하위권이다.
교통문화는 도시의 첫인상을 좌우한다. 외지인들이 도시에서 처음 마주치는 것은 그 도시의 역사나 랜드마크보다 도로 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매일신문은 연말까지 매주 주제별로 대구경북의 교통문화 현주소를 짚어보고, 전문가, 독자와 함께 대안을 제시하려 한다.
◆대구 팔달로(원대오거리~만평네거리)
이달 16일 오후 7시쯤 대구 원대오거리. 오봉오거리와 노원네거리, 만평네거리, 원대네거리, 고성네거리에서 뻗은 길이 모두 모이는 탓에 이곳은 항상 차와 오토바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퇴근시간과 맞물린 이 시각. 오봉오거리에서 만평네거리 방향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도로에 있는 차와 오토바이의 멈춤 신호. 그러나 서너 대의 오토바이가 신호를 받아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는가 하면 아예 보행자와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기도 했다. 정지선을 1, 2m나 침범한 오토바이 운전자 가운데 헬멧을 쓰지 않은 이도 있었다. 녹색 신호가 들어오기도 전에 오토바이들은 굉음을 내며 미처 교차로를 다 빠져나가지 못한 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북비산네거리에서 북구청 쪽으로 우회전하는 바깥 차로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정차했다. 빨리 가라는 경적소리에도 꿈쩍하지 않자 다른 차들이 이 차를 비켜가느라 차로 바꾸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장자리 차로엔 금세 긴 줄이 생겼다.
◆국채보상로(서성네거리~큰장네거리)
14일 오후 4시쯤 서성네거리~큰장네거리를 동서로 잇는 국채보상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은 평일 퇴근시간은 물론 주말 오후엔 늘 차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비산네거리에서 동산네거리 방향으로 가던 차들은 큰장네거리에서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뀌었지만 오히려 속도를 높여 교차로로 진입했다.
앞차가 멈춰 서자 이 차들은 교차로에 갇혀버렸다. 일명 꼬리물기 차들로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서문시장 쪽에서 직진과 좌회전 신호를 받은 차들이 앞을 가로막은 꼬리물기 차들 때문에 전진을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경적이 울렸지만 막아선 차들은 길을 열어주지 못했다.
도로가 상점에 들르려고 불법 주'정차한 차들 탓에 시내버스 3대가 승강장에 접근하지 못했다. 뒤따르던 한 승용차가 버스가 막아선 차로를 벗어나려 핸들을 틀었지만 방향지시등은 켜 있지 않았다. 갑자기 끼어든 차에 뒷차가 급정거했다.
◆달구벌대로(반월당네거리~계산오거리)
16일 오후 7시쯤 현대백화점 앞. 택시 10여 대가 가장자리 차로를 독차지했다. 그 옆차로에는 백화점 주차장으로 향하는 차들이 긴줄을 만들었다. 시내버스는 승강장에서 3개 차로나 떨어진 도로 한가운데에 승객을 내렸다. 승강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급히 도로로 나와 차들 사이를 피해 버스에 올랐다.
현대백화점 주차장을 나온 차는 달구벌대로 중앙선 방향으로 5개 차로를 단숨에 가로질렀다. 유턴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바람에 반월당네거리에서 계산오거리 방향으로 속도를 높이던 차량 4, 5대가 급히 브레이크를 밟거나 감속했다. 반대편 신남네거리에서 방향을 잡은 차들은 내리막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산오거리를 통과하려 했다. 그러나 신호가 노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고 횡단보도로 사람들이 걸어 나오자 이 차들은 꼼짝없이 교차로 갇혔다.
◆꼬리물기·끼어들기·방향지시등 안켜기 '도로 惡'
경찰청은 도로를 혼잡하게 만들고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나쁜 운전행태 중 꼬리물기와 끼어들기, 이륜차 인도주행, 방향지시등 미점등 등을 핵심 4가지로 꼽고 있다.
대구경찰청 교통안전계 심경보 경위는 "블랙박스 영상을 제보받아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고, 사고가 자주 나는 교차로에 경찰이 직접 캠코더를 들고나가 위반 차량을 찍지만 불법과 얌체 운전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운전자와 보행자의 의식이 바뀌어야 무질서한 교통문화도 변할 것"이라고 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낙후한 교통문화 개선도 없다. 박용진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난폭한 운전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시민의식이 도로에서 표출되는 것이다"며 "다른 차가 신호를 받든 말든 나는 내 갈 길 가겠다는 태도가 각종 불법운전을 발생시킨다"고 지적했다.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홍준헌 기자 newsforyou@msnet.co.kr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이 시리즈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자기만 먼저 가겠다고 끼어드는 얌체 운전자, 교통흐름을 막는 불법 주정차, 사고위험을 높이는 꼬리물기 등이 상습적으로 벌어지는 현장을 알려주십시오. 또 운전을 하시다가 겪은 불합리한 신호체계나 도로 구조의 문제도 제보하시면 기사에 적극 반영하겠습니다. 전자우편은 kozmo@msnet.co.kr이며 전화는 010-6543-588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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