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빠르다와 이르다

말을 배울 때 반대말을 배우는 이유는 반대말을 알면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붙다'라는 말을 알면 반대말 '떨어지다'는 쉽게 파악이 된다. 그리고 흔히 혼동하는 '다르다'와 '틀리다'의 경우도 반대말이 각각 '같다'와 '맞다'라는 생각하면 혼동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하나의 말이 여러 개의 반대말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사용이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그중 하나가 '이르다'와 '빠르다'이다.

많은 참고서나 공무원 수험서를 보면 '약효가 빠르다/느리다'처럼 '빠르다'는 '느리다'의 반대말로 사용하고, '이른/늦은 아침'처럼 '이르다'는 '늦다'의 반대말로 사용한다고 설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빠르다'는 속도가 빠른 것에서 확장되어 '어떤 기준이나 비교 대상보다 시간 순서상으로 앞선 상태에 있다'는 의미가 있고(빠르면 앞에 서니까), 부정적인 문맥과 결합해서 '어떤 일을 하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태에 있다'는 의미도 있다.(빠르면 성숙하지 못하니까) 이때는 '생일이 빠르다/늦다', '번호가 빠르다/늦다'와 같이 반대말이 '늦다'이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구분법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해수욕장을 개장하기에는 아직 빠르다/늦다'의 경우에는 '이르다'와 의미 영역이 거의 겹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맞다/틀리다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실제 용례를 보면서 어느 것이 보다 상황에 적절한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르다'는 '대중이나 기준을 잡은 때보다 앞서거나 빠르다.'로 설명이 되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중이나 기준'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다'를 쓰는 경우는 일반적인 기준보다 앞서 있다는 의미가 강조된다. 예를 들어 '이른 나이에 직장을 잡았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직장을 잡는 이십 대 중후반에 앞서 직장을 잡은 것이 중요하지, 얼마나 더 앞선 시점에 직장을 잡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축구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최대한 빠른/이른 시간에 골을 넣어야 한다.'의 예에서는 '이른'보다는 '빠른'이 더 적절해 보인다. '내가 너보다 생일이 석 달 빠르다.'에서 '빠르다'를 '이르다'로 바꾸기 어려운 데서 볼 수 있듯 기준이 보다 세분화된 경우에는 '빠르다'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신문에서는 흔히 '빠르면/이르면 이번 주 내에 개각 발표가 있을 것이다.'는 표현을 쓴다. 일부 책에서는 '빠르면'이 틀렸다고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는 표현이다. 다만 미묘한 어감의 차이는 있다. '빠르면'을 쓰는 경우는 '(인선 작업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속도에 방점이 가 있는 경우이다. 만약 사람들의 일반적인 예상보다 앞선 시점에 개각 발표를 하는 것을 강조하려 한다면 '이르면'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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