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하느님의 미안-이영광(1965~ )

문일 씨는 정신지체장애 2급 동네 아제다

일곱 살들과 잘 노는 쉰입곱,

나만 보면 담배 달라고 한 지

십오 년이다

십 년쯤 전인가, 빚이며 재산 분할에 시달릴 때

식전부터 담배 줘, 하던 그에게

맡겨놨어요?

싸늘히 한마디 쏘아붙이고 나서부터는

미안해요, 담배 좀 줘요, 한다

여자를 알려줄 수도 돈을 알려줄 수도 있었는데

미안을 가르쳐주고 말았다

하느님은 유구히 상한 정신 안에 깃들어 계신다 했으니

나는 강산이 변하도록 하느님에게 사과를 받고 산다

담배값이 두 배가 되도록

미안이라는 폭력을 당하고 산다

흡연이 모욕인 시절에

문일 씨가 내 담배를 갑째 뺏어가면서도

미안해요, 하지 않는 날이 올까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폐암도 과태료도 모르면서

하느님은 똑똑하고 모질기만 하신데

죄를 잊는 법도 없고

죄인을 기억하는 법도 없으신데

-《포지션》 2014년 봄호.

화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동네 아저씨 문일 씨와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여 시적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문일 씨는 정신지체 장애인이다. 어른이지만 아이들과 노는 동심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문일 씨에게 화자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화자는 그런 자신을 반성하며 내면의 고백을 통해 시적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하느님은 상한 정신 안에 깃든다고 했으니 문일 씨가 곧 하느님이다. 하느님으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 살아야 하니 화자의 반성적 사고는 깊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리라.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