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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대구서 하와이 동포 관심 호소한 민찬호

'하와이 동포 만세! 하와이 동포 만세! 하와이 동포 만세!' 찌는 폭염 속에 1923년 8월 7일부터 3일간의 대구 방문을 마치고 10일 마산을 향해 대구시민들과 이별을 한 '하와이학생고국방문단'은 대구에서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도착 첫날인 7일 대구역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모여 환영했다고 당시 언론은 보도했다. 첫날부터 기독교 초대 만찬회, 만경관에서의 강연회, 조찬 모임, 다섯대 자동차로 나눠 타고 대구시내 돌아보기, 만경관 음악회, 장직상 씨 초대 오찬회, 달성공원 앞 조양회관 마당에서의 환영회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민찬호(閔贊鎬'?~?) 단장은 대구에서 미국 포와(하와이)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동포들의 삶과 애환, 힘든 동포 자녀교육 문제 등을 소개했다. 앞서 서울에서도 하와이 교민 사정을 하며 "내지(內地) 동포들이 우리 같은 외양(外洋)에 있는 우리를 도와주지 않으면 그 누가 우리를 도와주겠습니까?"라며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9월 1일 하와이로 갈 때까지 하와이 동포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서울서 태어나 배재학당을 다녔고 1905년 하와이 호놀룰루 한인교회 목회자로 초빙돼 동포들과 한인상조회(韓人相助會)를 조직했다. 1909년엔 하와이, 샌프란시스코에 국민회(國民會) 창설에도 참여했고 1913년 안창호 등이 흥사단을 만들 때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21년 오늘 이승만과 함께 호놀룰루에서 임시정부 후원단체인 동지회를 창립, 지원하는 등 열악한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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