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5년에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회복을 위한 십자군 전쟁을 주창하였다. '은자'(隱者) 피에르는 거기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태어난 시기가 확실하지 않은 이 인물은 당나귀를 타고 거리를 쏘다니며 이슬람과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일과였다. 그의 광적인 행동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교황의 연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먹혀들었다.
피에르는 1차 십자군 원정에 앞서 병사들을 규합해 원정길에 올랐다. 말이 병사였지, 농민, 범죄자 등이 많이 섞인 오합지졸들로 '군중 십자군'으로 불렸다. 종교적 열정과 함께 고달픈 현세의 삶에서 벗어나 한몫 잡고 싶은 욕구가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이슬람 지배하의 예루살렘에 닿기 전에 엉뚱하게도 헝가리와 비잔틴 제국에서 약탈에 나서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피에르는 직후에 1차 십자군에 합류해 안티오키아 공방전에 참여했다. 그가 이 전투에서 롱기누스의 창(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옆구리를 찌른 후 예수의 피가 묻었다고 여겨지는 창)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자 진위를 가리려고 시죄법 재판(시련 재판: 길을 불로 뒤덮고 피고가 그 위를 걷게 한 뒤 살면 무죄, 죽으면 유죄인 식의 재판)을 받게 됐다. 그의 죽음은 여러 설이 있는데 1098년 오늘, 시죄법 재판의 후유증으로 죽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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