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맨홀 때문에 장애인'된 시민…권 시장 항소 포기 권유

"市 과실 맞다" 1심 패소 뒤 항소 포기 권유…'시민 행정' 스타일 인 듯

권영진 대구시장이 시와 시민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항소를 포기하는 것으로 '시민을 위한 시정'에 발동을 걸었다.

권 시장은 취임 직후 시가 시민과의 민사소송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자초지종을 알아보고는 항소하지 않도록 권유하며 그동안 강조해온 '시민을 위한 시정'을 위한 첫 걸음을 뗐다. 시는 결국 조정위원회를 거쳐 7일 항소를 포기했다.

사건은 이랬다. 시민 A씨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맨홀 뚜껑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로 4급 장애 판정을 받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지난달 20일 '대구시는 A씨에게 1억5천79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구시는 3심제에 입각, 내부적으로 항소하는 것으로 정하고 항소를 준비했다.

그러나 권 시장은 취임 후 받은 보고에서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됐고, A씨 가정의 사정 및 항소 결과 등에 대한 얘기를 종합한 뒤 항소 포기를 권유했다. A씨 어머니는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형은 뇌병변을 앓는 중증장애인이어서 A씨 홀로 가족을 건사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상태에서 A씨마저 사고로 장애 등급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항소를 한다고 해도 1심 배상금에서 20~30% 정도 감액받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시가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변호사 등의 자문을 들은 뒤 권 시장은 항소 포기를 결심하게 됐다.

권 시장은 "시 입장에선 항소심에서 20~30% 감액받는다고 해도 지연이자 등을 감안하면 금액적으로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 그런데 딱한 사정의 A씨 입장에선 항소심이 끝날 때까지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생계가 막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시도, 시민도 득이 되는 게 없다면 이는 시민을 위한 시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시 관련 부서 등은 '항소를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상소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인데다 A씨가 시청 앞에서 시위를 계속하는 등 일종의 떼를 썼기 때문에 생떼에 항복한 것처럼 보여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항소를 고집했다. 하지만 '시민 위한 시정'을 내세운 권 시장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권 시장은 "부당한데도 계속 요구하는 것은 '생떼'지만 정당한 요구는 '생떼'가 아니다. 부당한데도 떼를 쓰고 시위한다고 들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생떼' 써서 보상금 받으려는 의도라면 결과를 떠나 항소하고 대법원까지 가야겠지만 대구시의 과실이 맞고, 뒤집을 가능성은 없는데 그 과정에서 시민만이 고생해야 한다면 항소를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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