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 브라더스, 20세기 폭스 등 미국 유명 드라마(이하 미드) 제작사들이 자사의 드라마 한글 자막을 불법으로 제작해 배포한 자막 제작자들을 고소한 데 따른 논란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10여 년 전 팬텀, CSI, 섹스 인 더 시티, 프렌즈 등의 '좋아하는 미드를 함께 즐기자'로 시작한 미드 동호회는 우리나라의 미드 시장을 확대시키는 분수령이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좋은 정보를 나누고자 하는 분위기도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대되는 추세다. 그런 측면에서 미드 자막 제작자들에 대한 고소가 '1차 저작자의 권리 존중'보다는 '공유문화에 대한 제재'의 측면이 더 커 보인다. 고소를 당한 15명의 자막 제작자 중 14명이 무료로 자막을 제작했다는 사실도 네티즌의 반감을 키우고 있다.
대부분 일반인으로 구성된 인터넷 무료 자막 제작자들은 30분짜리 미드 한 편을 번역하는데 3~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좋아하는 드라마를 번역하면서 영어공부도 하고, 많은 이들과 나누는 보람도 있다고 한다. 이들의 활동을 '인터넷 사회의 순기능'으로 분석한 심리학 논문도 있다.
문제는 이것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원작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2차 저작물을 작성하고 유포하는 것 자체가 저작권 침해다. 좋은 뜻에서 제작했다 해도 저작권자의 동의 없이 유통되었다면 저작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자막 제작자는 상업적이지 않았지만 다운로드 때마다 '제휴 콘텐츠' 비용을 받은 웹하드 업체는 수익을 냈다. 반면 정식계약 후 방영 중인 국내 케이블TV는 수익이 악화되고 전문번역가들의 고사위기까지 거론되면서 제작사들은 저작권 침해는 상업윤리를 해치는 것은 물론 원작자에게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 제작사들이 '왜 인제 와서 소송을 시작했고, 그 대상이 무료 자막 제작자들인가' 하는 점이다. 경제적 논리로 보면 제작사들은 오히려 자막 제작자들 덕분에 홍보 효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자막으로 인해 누구나 쉽게 미드를 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드 열풍'을 일으켰다.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40% 정도가 어떤 형태로든 미드를 접했다고 한다.
'섹스 앤 더 시티'는 20~40대의 여성들에게 마놀로블라닉을 신게 하고, 브런치를 즐기며, 탄산수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게 했으며 뉴욕에서의 생활을 꿈꾸게 했다. 미드는 국내 패션과 음식문화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패션업계, 식음료 업계와 관광까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제작사들이 이렇게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자막 제작에 급제동을 건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확보된 국내 미드 시장에 자막 번역을 포함한 미드의 직접 유통으로 수익을 내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저작권 소송이 불법 자막의 유통을 차단하고, 자막 제작 자체를 상업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기에 앞으로 미드 소비의 주도권을 제작사들이 직접 갖겠다는 의미다.
시장은 냉정하다. 그동안 우리가 미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이제 의미가 없다. 시장에서 문화적 교류나 공유는 신파에 지나지 않는다. 저작권은 국제조약이며, 우리나라도 저작자의 권리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국제적인 기준 앞에서 국내 정서나 인터넷 문화를 이유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지금은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할 때이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상속자들' 이 중국에 정식 판권 수출 계약도 못한 상황에서 불법 자막이 유포되어 방송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중국의 정서나 '한류'를 이유로 무마하려 든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콘텐츠 기업의 입장에서 지적재산권은 생명줄이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우리도 정보 공유의 문화적 의미와 지적재산의 가치 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정보 나눔의 성숙한 이용자 문화가 만들어지고 동시에 기업의 콘텐츠가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게 된다면 기업 또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경쟁력과 함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박은경/한국애드·(주)스토리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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