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우는 스크린]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

두 종족의 끝과 시작

2011년에 개봉해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킨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다음 이야기이다. 1968년, 찰턴 헤스턴의 유인원 연기로 화제를 모은 고전영화 '혹성탈출'을 21세기에 부활시킨 시리즈 영화이며, 모든 것이 파괴된 후 유인원과 인간이 일대 전쟁을 벌이는 디스토피아 SF다.

전작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유인원들은 자신들을 가두고 학대한 인간들로부터 탈출해 자유를 쟁취했다. 한편 인간들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간 후, 10년 뒤의 이야기가 '혹성탈출: 반격의 시작'에서 펼쳐진다.

급속도로 진화한 유인원들은 도시를 떠나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번영을 이루었다. 유인원을 이끄는 시저(앤디 서키스)는 2천여 유인원을 통솔하는 뛰어난 리더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지킨다. 유인원들은 인간들이 수행한 뇌 진화 실험으로 인해 인간의 언어와 수화를 할 정도로 진보한 생명체가 되었다. 전기, 불빛, 난방 아무것도 필요 없는 유인원들은 어느새 인간보다 강한 존재로 살아간다.

한편, 바이러스로부터 살아남은 극소수 인간들은 멸종 직전의 위기와 가족을 잃은 고통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생존자 공동체의 리더 드레이퍼스(게리 올드만)와 조력자 말콤(제이슨 클락)은 다시 인간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다. 10년 동안 서로의 존재를 잊은 채 살아온 두 종족은 발전소를 찾아 숲에 들어간 인간들에 의해 다시 마주치며, 이후 극심한 갈등과 불신 속에 생존을 건 사투가 시작된다.

공존을 원하는 유인원 리더 시저와 인간 말콤은 종족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신뢰를 표하며 평화를 이루어내려 하지만, 주변 여건은 그들의 호의와 우정을 가만두지 않는다. 그리하여 각 종족의 파멸을 건 전쟁이 펼쳐진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두 종족이 극한 대립을 하고, 이 가운데 공존을 꾀하는 평화주의자들에 의해 안정을 이룰 듯하지만, 내부의 반발자들이 꾸미는 음모로 서로를 살육하는 전쟁이 시작되고, 다시금 지구촌은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는 그동안 익숙히 봐왔던 액션 블록버스터의 단순 서사이다. 이야기는 예측 가능하게 구성되어 있지만, 이 영화는 액션 스펙터클을 강조하는 여타 블록버스터와 다른 점이 있다.

종족 내부의 전쟁 옹호론자들이 외부의 적보다 훨씬 위협적인 가운데, 적과 동지를 나눌 수 없는 구도 속에서 갈등하는 리더들의 기지에 영화는 초점을 둔다. 선택을 앞에 둔 리더들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세상사의 복잡한 측면들이 펼쳐진다. 이는 극심한 위기의 한가운데 있는 바로 우리의 현실을 은유하며, 진정한 리더상에 대해 함께 고민하게 한다.

영화는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 유인원들이 보여주는 풍부한 표정과 현실적인 캐릭터화가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으로 분했던 모션 캡처 전문 배우인 앤디 서키스가 유인원 리더 시저 역을 맡아 다양한 표정을 살려낸다. 실제 캐나다의 숲에서 로케이션 촬영한 유인원 공동체 공간이 흥미를 자아내며, 특히 수천 마리의 유인원이 떼를 지어 움직이는 장관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라는 점에서 실제적으로 섬뜩하게 다가온다. 인간의 이기적인 동물실험 결과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그 바이러스는 오히려 인간을 파괴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유인원을 적으로 몰며, 평화보다는 전쟁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뿐이지만 결국은 서로를 장악하기 위해 또다시 충돌을 야기하고 함께 파멸하게 되는 것은,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키는 현대 정치 구도를 은유한다. 두 종족 간의 대결은 인종 간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이며, 인종차별주의가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예측게 한다. 영화는 스펙터클 이상으로 미래에 대해 준엄한 경고를 날리는 우화이다.

'클로버필드'(2008)와 '렛미인'(2010)을 연출한 맷 리브스의 연출력이 또 한 번 빛나는 영화다. 극장가 여름방학 성수기를 여는 위협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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