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글씨나 그림, 문양을 새기는 '서각'(書刻). 밋밋한 나무에 작가의 예술 혼을 새겨 넣는 작업이다. 시(詩), 서(書), 화(畵)를 옮겨놓은 만큼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서각은 또한 나뭇결과 조각칼의 흔적이 어우러져 독특한 미학을 보여준다. 식당을 운영하는 이정순(52) 씨는 요즘 서각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서각
'타다다닥…타다다다다닥…탁! 탁! 탁!' 간결하고 경쾌한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소리가 날 때마다 조각칼이 나뭇결 사이를 파고든다. 칼이 지난 자리에서는 나뭇결이 살짝 고개를 치켜든다. 평평했던 나무판에 글씨가 조금씩 드러난다.
"서각은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매력 있고 재미있는 작업이에요.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듯이 서각 또한 글씨나 문양이 되는 것이라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없어요. 저는 지금 서각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이 씨는 서각을 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욕망을 비우다 보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요즘처럼 바쁜 세태에 무엇을 쫓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이 쉴 수 있는 서각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씨에게 서각은 스트레스와 잡념을 날려버리는 최고의 선물이다. "나무에 뭔가를 새기고 있으면 온갖 상념이 사라진다"며 "오랜 시간을 들여 작품 하나를 완성했을 때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익히면 익힐수록,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신비로운 것이 서각"이라며 서각 예찬론을 폈다.
◆보는 순간 매력에 빠져
이 씨가 서각을 접하게 된 것은 4년 전.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대학 평생교육원에 입학하게 됐는데, 서각 작품을 접하게 됐어요. 보는 순간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숱한 서예 작품 가운데 언뜻 보이는 서각 작품 앞에 발을 멈추게 되었고 순간 고풍스러운 나무 빛깔 위에 아로새겨진 글씨의 멋스러움에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바로 시작했다. "나무 만지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나무 향도 좋았고 감촉도 좋았다. 바로 빠져버렸어요."
이 씨는 수요일 서각하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힐링시간이에요. 무념무상,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있어요. 꿈이 있으니 확실히 사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씨가 하고 있는 것은 전통서각이다. 전통서각은 과거의 각자(刻字) 기법으로 이어져 온 서각을 말한다. 작품의 서체, 도법(刀法), 채법(彩法), 양식, 목적에 있어 우리의 고유미를 가진 서각을 일컫는다. 단풍나무나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을 재료로 자연스러운 무늬를 그대로 살려서 각을 한 다음 토채나 석채, 각종 컬러를 사용해 칠을 하고 고풍스럽게 완성하는 작품이다.
그동안 작업한 20여 점이 이 씨가 운영하는 음식점(대구 수성구 매호동)에 걸려 있다. "식사하러 온 손님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또 부모들이 아이에게 글씨체와 사자성어 뜻풀이를 해주는 모습을 보면 보람도 있어요."
◆작가가 되고 싶어
이 씨는 사찰이나 공공기관에 작품을 기증하고 있다. "경산 어느 암자의 현판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어 제가 직접 새겨 줬더니 아주 고마워하더라고요. 저의 재능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기뻤어요." 이 씨는 기관이나 단체가 원하면 부족하지만 기증을 계속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 씨는 조만간 개인 작업실도 갖고 전시회도 열고 싶다고 했다. "혼자서는 못하고요. 선생님과 함께 전시회를 하려고 합니다." 이 씨는 또 하나의 꿈이 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라는 소리가 듣고 싶어요. '작가 이정순' 멋지지 않아요?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 '작가'라는 이름을 붙여 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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