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반려동물 키우기-동물들에게 다가가기

나는 그림 그리기를 썩 내켜 하지 않는 편이다. 어릴 적부터 미술학원을 제법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내 그림 실력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예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나에게도 직접 그렸던 그림 가운데 유독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다. 바로 초등학교 저학년 때 그렸던 동물 그림이다. 그 그림 속엔 거북이와 코끼리, 호랑이가 강가를 노닐고 있고 나무 위엔 원숭이와 새가 머물고 있는, 한마디로 당시에 내가 알고 있던 동물들을 총망라하여 완성했던 그림이다. 사실 어린이라면 한 번쯤 그릴 법한 내용의 그림이긴 하지만 그때도 나는 동물들을 참 좋아했기에 그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그리기가 꽤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당시에도 동물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는 이에 걸맞게 길거리에서 만난 강아지나 고양이, 새들을 보면 반색하며 쫓아가야 직성이 풀렸다. 나의 이런 극성맞은 행동에 대개의 동물들은 놀라 도망가기 일쑤였지만 말이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난 아직도 동물을 만나면 호기심에 이끌린다. 여전히 길에서 만나는 동물들을 보면 다가가고 싶고, 말을 걸고 싶어진다. 물론 이젠 모든 동물이 나에게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란 것도 알고, 동물들이 사람보다 조심성이나 경계심이 더 많다는 것도 알기에 먼저 다가감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지긴 했다. 다행히 반려인들과 함께 산책 나온 반려견들의 경우 나처럼 관심을 보이며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가끔 자기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신경 쓰느라 사람엔 전혀 관심이 없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짝 경계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며 반려인 등 뒤로 숨어버리는 녀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촉촉한 코를 킁킁거리면서 다가와 냄새를 맡거나 호감 어린 표정으로 꼬리까지 흔들기도 한다. 마치 자기가 상대방 눈에 한없이 귀엽고 예뻐 보인다는 걸 아는 것처럼 말이다.

어제는 골목길을 지나다 손으로 재면 겨우 한 뼘 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기고양이와 마주쳤다. 사실 처음에는 '봤다'기보단 '들었다'는 표현이 저 적확한 표현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냐아 냐아' 하는 가냘픈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어둑어둑한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주차된 차 밑에서 자그마한 녀석이 뛰어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아직 아기고양이라 자동차의 무서움을 잘 모르는 듯이 그 녀석은 정말 겁도 없이 차바퀴 위까지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니며 홀로 신나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순간 멈춰선 채 홀린 듯 보고 있던 나는 뒤늦게 혹시 다가오려나 싶어 살짝 아기고양이를 불러보았다. 그러나 녀석은 내 부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다가 다시 차 밑으로 사라져버렸다.

나와 마주쳤던 그 녀석은 아직 어린 고양이라 그나마 경계심이 없었지만, 보통 길고양이들의 경우엔 대부분 경계심으로 똘똘 뭉친 채 사람들을 바라보기 일쑤다. 그렇기에 먹을 것을 좀 챙겨주더라도 저 멀리서 조심하며 내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볼 뿐이다. 그래서 가끔 길고양이가 집까지 졸래졸래 따라와서 식구가 되었다는 고양이와 맺게 된 묘연(猫緣)에 관한 경험담들은 내겐 아직 신기하고도 머나먼 동화와 같은 이야기다. 가끔 배가 고프다며 다가와 칭얼대며 먹을 것을 달라는 길고양이들과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녀석들은 먹을 것을 먹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에도 근처에서 또다시 마주치거나 한 적도 있긴 했지만 그 거리 이상 내가 다가서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도 한 번쯤은 길에서 서로 가까워지는 그런, 고양이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곤 한다. 물론 현재 우리 집 터줏대감인 체셔와 앨리샤가 안다면 썩 내키지 않는 이야기겠지만, 우연히 길에서 만나서 느낌만으로 서로 다가설 수 있다는 것은 사람과 동물 사이라 해도 꽤 낭만적이고 황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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