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홍길동전의 교훈

홍길동전의 작자가 허균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균은 자기 스스로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으며, 홍길동전의 표지에도 허균이 작가라는 말이 없다. 허균이 처형될 때 죄목에 홍길동전과 같은 불온한 소설을 지었다는 것에 대한 내용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근거는 택당 이식 선생의 문집인 「택당집」에 있는 '洪吉童傳 許筠之所作也'라는 구절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던 택당 선생이 근거 없는 소리를 했을 리가 없으며, 서자 출신들과 어울렸던 허균의 행적으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쓴 '유재론'(遺才論)을 통해 볼 때, 허균이 아니라면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홍길동전의 배경 사상이 되는 것으로 이야기되는 '유재론'의 내용은 이렇다.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인데, 하늘이 인재를 낼 때는 신분의 귀천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골고루 낸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나라가 좁고 인구가 적어서 인재가 드물게 나지만, 신분이 미천하다고 제외를 하고, 어머니가 재혼했다는 이유로 제외를 하고, 서자라고 제외를 하다 보니 정작 쓸 인재가 없다. 혹여 빠진 인재들이 없는지 걱정해도 시원찮을 판에 위정자들은 인재를 찾는 길을 막고서 '인재가 없다'고 탄식만을 한다. 만약 중국이 우리처럼 인재를 등용했다면 대륙을 경영했던 명재상, 명장수들은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 당시 조선의 인재 등용은 하늘의 순리를 어기는 것이었다.

서자라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세상에 제대로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도 못하는 홍길동의 울분은 유재론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나라에 등용되어 일을 할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된 홍길동은 활빈당이라는 무리를 만들어 나라를 어지럽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임금은 홍길동을 힘으로 제압할 수 없음을 알고 마지못해 병조판서를 하고 싶다는 홍길동의 소원을 들어준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홍길동은 병조판서 자리에 오르자마자 사직을 하고, 자신의 무리들을 이끌고 평화로운 나라였던 율도국을 침공해서 왕이 된다는 것이다. 사실 홍길동이 조선에서 관료로 있어봐야 특권 의식을 가진 다른 신하들이 끊임없이 출신 성분을 문제 삼아 탄핵하려고 할 것이며, 자신의 뜻을 굽히고 유력한 파벌에 속하지 않는 이상 자리를 보전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출신에 상관없이 널리 인재를 등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능력을 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하는 것은 후대의 '허생전'에서도 지적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직 후보자 한 명도 제대로 발탁하지 못하고, 키우지 못하는 오늘날에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민송기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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