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중 FTA 반대 시위…中 '저가 쓰나미' 農都 경북 직접 영향권

경북의 농업인 1천여 명이 14일 오후 버스를 타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 협상장이 마련된 대구를 찾아왔다. "값싼 중국산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한중 FTA는 절대 맺어선 안 된다"며 깃발을 쳐든 것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5월까지 11차 협상을 진행했고 이달 14일부터 18일까지는 대구에서 제12차 협상을 갖는다.

농업인들은 이달 시진핑 중국 주석 방한 등을 놓고 볼 때 한'중 FTA 체결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총력 저지에 나설 태세다. 농산물 전국 1위 품목이 가장 많은 농도(農道) 경북의 농업인들은 한'중 FTA가 체결되면 농사를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낸다. 실제로 경상북도는 한'중 FTA로 인한 농업 피해가 한'미 및 한'EU FTA보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보고 죽으란 말입니까?"

농업인들은 한'미 FTA, 한'EU FTA와는 차원이 다른 대규모 충격파를 몰고 올 것이라고 했다. 멀리 떨어진 미국'EU와 달리 사실상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은 농산물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 온다는 것이다.

박상웅(44) 안동시 농민회 사무국장은 "지리적 인접성에다 교통의 발달로 중국은 이미 외국이 아닌 이웃이 됐다"라며 "중국에서 수확해 하루 만에 우리 가정에서 살 수 있게 되므로 가격 경쟁에서 실패할 것이 뻔한 우리 농산물은 이제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조상만(54) 한국농업경영인 상주시연합회장은 "한'중 FTA가 체결되면 스타 작물이 즐비한 농업 도시 상주가 경북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상주 농업인들은 쌀농사와 함께 곶감, 포도, 배 등 과수나 오이 등 채소를 함께 재배하는 복합영농인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 범위가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했다.

신경재(45) 상주곶감발전연합회 과장은 "최근 중국에 우리나라 농업인들이 똑같은 품종을 갖고 가서 곶감 건조시설도 우리나라하고 똑같이 만드는 등 감과 배 농사를 모두 짓고 있는 실정"이라며 "FTA 체결로 이들 농산물이 한국에 저가로 들어오면 우리는 당해낼 수 없다"고 말했다.

황영록(56) 한국농업경영인 의성군연합회장은 "중국산 수입 마늘 때문에 전국의 마늘 농업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특히 올해 경우, 마늘값 폭락으로 엄청난 시름에 잠겨 있다"며 "정부는 농업인 살릴 생각은 않고 농업인을 더 죽일 생각만 하고 있다"고 발끈했다.

강병주(55) 의성군 마늘생산자연합회장은 "마늘과 양파 등 양념류는 국내 생산량만 해도 넘쳐나 파동을 겪고 있는데 한'중 FTA를 통해 양념류가 대량으로 수입될 경우, 국내 농가들은 설 자리를 잃어 폐농으로 내몰린다"며 "귀농 등의 활성화로 농업도 이제 일자리를 만드는 중요한 축인 데 양념류까지 수입해오면 의성 마늘 농가는 이제 뭘하란 말이냐"고 했다.

김말경(46) 한농연 경북도지부 사무차장은 "경북도에는 사과, 포도, 복숭아, 자두, 참외 등 전국 1위 재배 과수품목이 한'중 FTA의 영향을 받는 초민감 품목"이라며 "이외에도 양념류인 고추, 참깨, 콩, 땅콩 등도 피해가 예상된다"고 했다. 그는 또 "직접 피해는 다소 적지만 딸기와 토마토, 수박 등도 간접 피해 품목에 해당된다"고 했다.

◆어떤 대책을 만들어야 하나

농업인들은 정부가 한'중 FTA로 인한 농업 피해 대책 마련에 소홀하다는 점을 성토하고 있다. 특히 농업인들이 가장 믿고 있는 지방정부조차 아예 무관심하다며 대책을 만들어달라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고 있다.

김해환(49) 한국농업경영인 청송군 연합회장은 "14일 농민대회에 참석할 수 있는 모든 회원들이 동참해 성난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중 FTA 체결이 만약 불가피하다면 체결 이후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사람에게 이익을 나눠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무역이득공유제'라는 제도를 마련해 농민들을 달래야 한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이 제도를 추진해야 하며 한농연도 모든 수단을 다해 이 제도를 관철시킬 것"이라고 했다.

구미시 한국농업경영인회 이재구(54) 회장은 "구미를 공단 지역으로만 알지만 잘 들여다보면 쌀 생산량으로만 따져도 도내 5위 수준일 만큼 농업 비중이 높다"며 "한'중 FTA가 체결되면 쌀, 사과, 배, 복숭아 등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되지만 정작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구미시가 뒷짐을 지고 있으니 정말 답답하다"고 했다. 이 회장은 "내년 예산 편성을 준비하는 10월 이전에 농업 관련 각 단체 회원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연 후 농민들의 의견을 모아 구미시와 시의회에 요구 사항을 전달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구미시 이찬우 농정기획담당은 "한'중 FTA가 체결될 경우 상당한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까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해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며 "이른 시일 내 대책 마련을 할 방침"이라고 했다.

김하연(55) (사)한국농업경영인 칠곡군연합회 회장은 "농업 부문이 제외되지 않은 채 FTA가 체결되면 국가적 차원에서의 농업보호대책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부가 먼저 털어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했다.

한'중 FTA가 피할 수 없는 파도라면 맞서야 한다는 적극적 의견도 있다. 우리 농업도 이제 수출길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수요보다 공급이 달려 고부가가치 작물로 불리는 성주'고령권 일부 농업인들의 얘기다.

성주 참외와 고령 딸기'멜론'수박 등은 그동안 일본을 비롯해 홍콩, 대만 등지에 수출됐지만 중국 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에도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이곳 농업인들은 전망하고 있다.

성주의 참외재배 면적은 지난해 12월 기준 3천879㏊이며, 재배농가는 4천433곳에 이른다. 참외 생산량은 2012년 14만3천200t이던 것이 지난해 14만9천t으로 증가했다.

경북도 최영숙 FTA농식품유통과장은 "경북은 농업 1위 품목이 많아 한'중 FTA로 인해 많은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 피해 구제책은 물론, 장기적으로 경북농어업진흥재단을 설립해 우리 농산물의 수출길을 틔우고 농어업 인재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육 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유통 혁신을 통해 농민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소득을 올리도록 모든 정책적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우리 농산물의 강점인 친환경 부문을 강화, 경북 작물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정책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하겠다"고 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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