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송해와 삼식이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것은 투자나 거래의 편중에 대한 리스크를 지적한 말일 것이다. 거래처가 전자회사들로 너무 몰려 있는 것을 내심 불안해하던 차에, 지난해 초 한 자동차 부품회사에 차량을 넣을 기회가 왔다. 새로운 거래처는 통상 오너인 내가 직접 들어가 운행을 시작한다. 역시 자동차 부품 쪽은 전자 공장과는 달랐다. 운임은 좀 박했지만 계절 경기를 거의 타지 않는 등 물량확보 측면에서 상당한 메리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10여 대가 넘는 지입 차량 기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상당히 노쇠해 있었다. 평균 연령이 60대 중반이었다. 저런 나이에 과연 24시간 풀가동되는 라인에 시간을 맞춰 납품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곧 그 우려가 기우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대단한 관록의 소유자였다.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영천에서 울산까지를 하루 네 차례 왕복하는 기사도 있었다. 오히려 '메이저리거'라 자부해온 내가 마이너리거로 전락할 지경이었다.

노인국(老人國)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50대 중반인 내가 갑자기 꿈나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이만 노인이었을 뿐 어디를 보나 노인이 아니었다. 같은 연배끼리 여럿이서 생활하다 보니 경쟁 심리가 작용해서인지 눈빛은 살아 있고, 에너지는 넘쳤다. 서너 명씩 방을 얻어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는데, 각자 아내가 정성껏 만들어준 반찬을 가져와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아직 돈을 벌어다 줘서인지 집에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는 듯했다.

나이 든 주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편상이 바로 국민 MC 송해 선생이란다. '전국노래자랑' 녹화한다고 집에 잘 안 들어오지, 돈 잘 벌어다 주지, 전국을 돌면서 지역 특산물 많이 얻어오지, '예쁜 짓'만 골라서 한다나. 반대 개념으로는 '삼식이'가 있다. 밖에 나가지 않고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은퇴한 남편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이제는 돌아와 집에서 좀 편안하게 쉬고 싶건만, 아내에겐 여간 불편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 수명 100세의 시대다. 수입을 떠나 건강을 위해서라도 일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빈둥빈둥 세월을 죽이는 사람과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노화 속도에도 많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여가선용이라는 것도 망중한에서 찾아야지, 일과를 휴식으로만 채워서야 여유를 즐긴다고도 하기 어렵다. 송해처럼 대접을 받으며 살 것인가, 삼식이가 되어 천덕꾸러기로 살 것인가? 선택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장삼철/삼건물류 대표 jsc103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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