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가명'56) 씨의 왼쪽 팔은 굵은 핏줄이 흉하게 튀어나와 있다. 20년이 넘게 신장 투석을 하면서 남은 상처다. 젊은 시절부터 신장이 좋지 않아 2번의 신장 이식 수술을 거치면서 자신의 몸을 살피기도 어려운 이 씨이지만, 그의 어깨에는 82세 노모와 중학생 아들이 기대고 있다. 특히 이 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엄마 없이 할머니와 아빠 둘이서 키운 아들이다. 할머니가 다리 수술과 폐렴 등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라 제대로 돌봐줄 사람도 없지만 아들은 공부도 학교생활도 열심이다. 하지만 학원 하나 변변하게 보내지 못해 할머니도 아빠도 눈물을 글썽인다.
"사춘기인데도 크게 엇나가지 않고 학교생활을 잘하는 걸 보면 항상 고맙죠. 엄마도 없이 아픈 아빠와 할머니 밑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키우는 게 항상 미안해서…."
◆친척 집에서 밥을 얻어먹던 어린 시절
어릴 적부터 이 씨의 집안 살림은 빠듯했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던 이 씨의 아버지는 해방 1년 뒤 돌아왔지만 척추를 다쳐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버지가 돌아온 뒤 이 씨가 태어났고, 어머니는 홀로 공사장 허드렛일 등 일자리가 나는 곳마다 돌아다니며 4남매를 키웠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보면 아버지는 일을 못해 집에 계시고 어머니가 항상 일을 찾아다녔어요. 누나는 아침마다 친척집에 들러 밥을 얻어오고 김치 하나로 매일 끼니를 때웠죠."
집안 형편 때문에 남매들은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이 씨도 중학교를 다니다 중퇴하고 가내수공업을 하는 곳에 들어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특별한 기술이 없다 보니 성년이 돼서도 주로 노동력을 많이 요구하는 작은 공장을 전전했다. 항상 배고픈 생활을 했고 건강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20대 후반 직원이 200여 명인 큰 공장에 취직하게 됐고 밥걱정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 만큼 월급도 받았다.
"이제 우리 가족도 인생이 좀 펴나 싶었어요. 남들이 생각하면 그렇게 큰돈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친척 집에서 밥을 얻어오던 우리 가족은 먹고살 수 있을 정도만 돼도 행복했으니까요."
◆건강 탓에 눈앞에서 사라진 행복
고생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 씨에게 또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매번 머리가 아팠지만 먹고살기 바빠 병원 한 번 가지 못했던 이 씨는 번듯한 공장에 취직한 지 2년 만에 정기검진을 받았고 고혈압과 신장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1년여간 약을 먹었지만 이 씨의 신장은 이미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이때부터 이 씨는 신장 투석을 하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 병원에서 신장 투석을 하면서 건강은 물론 일자리도 잃었다.
"지금은 의료기술이 발달했지만 당시에는 신장 투석을 해도 완벽하게 되지 않는지 병원에 갔다 오면 항상 기운이 없어서 아무 일도 하지 못했죠. 회사는커녕 틈틈이 일할 수 있는 잡일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투석을 시작한 지 5년 정도 지났을 때 당장 신장 이식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고맙게도 여동생이 신장 한쪽을 떼어줬고 이 씨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큰 수술을 거쳐 힘든 일은 할 수 없었지만 노점에서 채소를 파는 장사도 시작했다. 이때쯤 아이 엄마도 만나게 됐다. 다시 행복을 꿈꿔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 씨도 희망을 가졌다.
◆두 번의 신장 이식에도 걱정은 오직 아들
건강을 회복하고 결혼한 뒤 아들까지 얻게 됐다. 하지만 불행은 이 씨를 또다시 쫓아왔다. 아들이 세 살 되던 해 아내는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이후 2주 만에 아들은 뇌수막염으로 생사를 오갔지만 아내는 병원에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았다.
"아들 이름으로 보험을 들어놔서 보험금을 타러 왔더군요. 그때 아들을 생각해 다시 잘 살아보자고 말했지만 이미 아내 마음은 떠난 후였어요."
다행히 아들은 건강하게 병원에서 나왔다. 아내가 떠나고 아픈 아들을 돌보는 동안 이 씨의 신장은 다시 망가졌고, 신장 투석을 다시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갔고, 올해 이 씨에게는 다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 씨에게 꼭 맞는 장기 기증자가 나타난 것. 지난 6월 또 한 번 신장 이식을 받았고 건강을 조금씩 회복해가고 있다.
다만 이 씨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는 이 씨 가족은 어머니의 다리 수술 등과 자신의 장기 이식 수술 등 엄청난 병원비 때문에 항상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초등학교 시절 반에서 회장을 하고 공부도 늘 상위권을 돌던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며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지만, 병원비로 주변에 빚만 잔뜩 진 이 씨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공부하고 싶다는 자식에게 공부를 시켜주지 못하는 부모 마음은 정말 참담합니다. 우리 아들은 나처럼 살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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