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멋 '메이크업'지운 뉴욕의 속살…20대 후반 평범녀 '좌충우돌' 스토리
뉴욕 이야기이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다보는 맨해튼 고층빌딩 숲, 자유의 여신상, 5번가 명품숍, 휘황찬란한 브로드웨이, 고상한 곳에서의 브런치, 멋들어진 재즈 클럽…, 그런 거 없다. 뉴욕의 낭만과 멋은 부자들의 소유물일 뿐. 세계 제1의 핫한 도시 뉴욕에도 가난한 보통사람들이 산다. '프란시스 하'는 가장 보통의 뉴욕에서 만나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자, 영화는 흑백이며, 프란시스라는 20대 후반 여성의 좌충우돌을 따라간다. 영화에는 주인공의 특별한 임무가 펼쳐지지 않는다. 그냥 그녀와 주변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따라간다. 그런데도 무지무지 재미있다는 점. 빵빵 터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식상하다고 느껴질 때다. 그리고 곧 다가올 극장가 여름방학 성수기의 대작 한국영화들이 구원자를 자처하며 촘촘하게 공개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저기 우당탕 터지고 깨지는 영화로 머리가 지끈거린다면 잠시 쉬어 가는 게 상책.
흑백이라도 장면이 평평하지 않고, 사건이 아니라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져도 몰입감이 떨어지지 않는다. 바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씁쓸하지만 동시에 또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힘을 얻는다. 쌉싸래한 커피 맛과 즉흥연주의 멋스러움이 살아나는 재즈 연주를 뉴욕 한복판에서 맛보는 듯한, 그런 현실감으로 영화는 넘실댄다.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 둘도 없는 친구 소피와 살고 있는 27세 뉴요커 프란시스는 무용수로 성공해 뉴욕을 접수하겠다는 거창한 꿈을 꾼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몇 년째 평범한 연습생 신세일 뿐이다. 그에 비해 출판사 편집인으로 활동하는 소피는 집안 좋고 남자친구도 근사해서 프란시스와는 다른 계층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애인과 헤어졌다고 믿었던 소피가 독립을 선언하자 그녀는 이제 갈 데가 없다. 프란시스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는 남자들의 집에 얹혀산다.
변변한 직업도 사랑도 없고, 우정도 쉽지 않다. 데이트 비용이 아까워 남자도 만나지 못하는 '안 생기는' 프란시스에게 무용단 비정규직 단원 자리도 녹록지 않다. 허드렛일에 나서야 입에 풀칠이라도 하니, 좋은 옷 좋은 음식은 그저 남의 떡. 친구 앞에 허세를 떨다 확 그냥 막 그냥 파리 여행을 질러본다. 시차 때문에 컨디션은 엉망이고, 예고 없이 친구를 만나고자 해봐야 성사되기 힘들다.
우디 앨런('블루 재스민' '애니 홀')은 신경증과 스트레스로 가득한 지식인 뉴요커의 근심을 유머로 승화하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대부')와 마틴 스코시스('갱스 오브 뉴욕')는 뉴욕 폭력의 역사를 화려한 스타일로 펼쳐보였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뉴욕은 사랑을 하게 만드는 도시이고, '섹스 앤 더 시티'는 뉴욕 상류사회에서 생활하는 허세녀들의 거품 같은 일상을 스타일리시하게 포장하여 많은 이들로 하여금 뉴욕을 더욱 열망하게 만들었다.
이에 비해 '프란시스 하'의 노아 바움백 감독은 메이크업을 지운 뉴욕의 속살을 그대로 내보인다. 하지만 찌질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다문화주의의 에너지가 넘치는 뉴욕은 가난해도 살 가치가 있다. 세계의 다른 활기찬 도시들과 다르지 않고, 이곳을 거쳐 가는 젊은이들 역시 세상 젊은이들과 비슷한 고민을 한다. 정규직인 세상에서 말이다.
2005년 '오징어와 고래'로 인디영화인의 산실인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노아 바움백은 자신의 아내가 된 그레타 거윅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그녀를 사랑스러운 뉴요커 프란시스로 창조해내었다. 프란시스는 남자가 '안 생기는' 불안한 여성들의 친한 여자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생활에서 나온 대사는 리얼해서 우리네 삶과 비교하면서 피식거리게 만든다. 춤에 별로 재능이 없어 보이고 조금은 통통하고 평범한 얼굴의 프란시스는 세상의 많은 평범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넘어지고 망신당해도 자학하지 않고 자신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 아름다운 보통사람의 사랑스러운 이야기, 젊고 생기발랄하며 풋풋한 젊은 친구와 마주하는 기분 좋음이 느껴지는 영화다. 평범한 내 삶에 대해서도 정념이 솟아난다. 놓치지 마시길.
정민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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