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월 하순 어느 날 오전.
휴전선 일대에는 엄청난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 습격을 기도한 '1'21 사태'와 이틀 후 벌어진 푸에블로호 사건으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 제2전투공병대대 소속 데니스 클라인 중위는 지프를 타고 휴전선 근처 양주골을 지나고 있었다.
자유의 다리 근처 비무장지대(DMZ)의 벙커와 도로를 정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현장으로 가던 길이었다.
이때 클라인 중위는 열차에서 막 쏟아져 나온 교복 차림의 남녀 학생들이 거리에서 대오를 이루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학생들은 검은 글씨로 구호가 새겨진 하얀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학생들 약 200명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면서 도로에 나타나 북쪽 자유의 다리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었다.
클라인 중위는 주방에서 일하던 한국인에게 "저 학생들이 도대체 뭘 하는 거냐"고 물었고, "1'21 사태를 저지른 북한을 규탄하면서 북진 통일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그가 점심을 끝내고 자유의 다리로 가자 더 놀랄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휴전선 방향으로 떼를 지어 다리를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클라인 중위가 DMZ 담 근처에 지프를 세웠을 때는 이미 학생 여러 명이 담을 넘으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지뢰가 무더기로 매설돼 있어 학생들이 담을 넘으면 자칫 대형 참사가 날 상황이었다.
아찔해진 클라인 중위는 서둘러 동료 장병과 합세해 학생들을 담에서 끌어내렸다. 학생들은 제지를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몰려들었고, 미군은 이들을 억지로 트럭에 태워 자유의 다리 건너편으로 옮겼다. 이 소동은 약 20분간 지속됐다. 그는 소동이 마무리된 후 "당시 학생들은 DMZ를 넘어가 북한군을 도발해서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북진 통일을 이루려고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희생돼도 좋다는 각오를 했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클라인 중위는 그 후 군 복무를 마치고 민간인 생활로 돌아갔으며,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근교 밀밸리에서 지리정보시스템(GIS) 기업 '바운더리 솔루션스'(www.boundarysolutions.com)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한 사건을 일으켰던 남녀 학생들이 46년 전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직접 만나서 들어 보고 싶어한다.
북진통일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죽어도 좋다는 학생들의 생각은 위험천만한 만용이고 그릇된 것이었지만, 당시 한국인들의 기백을 보여 주는 사례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옛 신문을 찾아보면 클라인 씨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사건이 1968년 2월 7일에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소재 용문산 기드온 신학교와 고등성경학교의 학생, 교직원, 신도 등 400여 명이 자유의 다리를 건너 원정 시위를 벌이고 북진통일을 외치면서 DMZ에 진입하려다가 미군에 제지된 사건이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미군은 현장에 탱크까지 출동시켰고 제2사단 지원사령관 조지 로빈스 대령이 현장 지휘를 맡았다. 당시 장면을 촬영한 한국 기자들이 카메라를 압수당하기도 했다.
그가 겪은 1968년 1월 하순 학생 시위에 직접 가담했거나 또는 가담했던 인물을 아는 독자는 클라인 씨(Dklein@pacbell.net)에게 제보하면 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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