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비슷한 시기에 권좌에 올랐다. 시 주석은 지난해 3월 국가 주석에 선출됐고 박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했다. 두 실력자의 취임 시기는 비슷했지만 첫 행보는 사뭇 달랐다.
권력을 쥔 시 주석이 먼저 찾은 곳은 중국의 사정'반부패를 총괄하는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였다. 시 주석은 이곳에서 '호랑이든 파리든 모두 때려잡겠다'고 일갈했다. 여기서 '호랑이'는 '당 고위 관료'를, '파리'는 '인민 대중'을 뜻한다. 부패와 연결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누구나 정권을 쥐면 군기부터 잡으려 드는 것이 상례다. 적당히 엄포를 놓고선 슬며시 칼을 내려놓는 것이 관례였다. 시 주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시 주석은 본격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취임 후 호랑이로 분류될 수 있는 성장이나 장'차관급 인사만 30여 명이 낙마했다. '군 부패의 몸통'이라던 중국군 최고 실력자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까지 '호랑이 그물'에 걸렸다. 쉬 전 부주석도 잡아들인 만큼 '호랑이 중 호랑이'라는 저우융캉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사법처리도 가시권에 들었다. 정치국 상무위원은 처벌받지 않고 정치국원은 사형당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은 옛말이 됐다. 이제 저우융캉은 목숨을 구걸해야 할 처지다.
시 주석의 호랑이 사냥엔 공산당 중앙기율위가 전면에 나섰다. 당 서열 6위 왕치산이 서기를 맡고 있다. 최근 미 워싱턴 포스트 지는 당 중앙기율위의 기능과 권한에 대해 "미국 FBI(연방수사국)와 대통령 경호실, 재무부 회계 감사국을 합한 수준"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기능과 권한이 호랑이를 때려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반발도 드세다. 당 중앙기율위가 시 주석의 정적 제거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반부패 운동 속도 조절을 요구하는 소리도 크다. 시 주석이 당 중앙기율위를 앞세워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렇지만 시 주석은 꿈쩍도 않고 있다. 창피를 당하더라도 잘못을 까발려 지금의 부패 구조를 치유하지 않으면 중국 공산당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론도 시 주석에 훨씬 우호적이다.
우리나라에선 오랫동안 대검 중수부가 '한국산 호랑이'를 잡아왔다. 중국처럼 '권력의 시녀'란 비아냥도 있었지만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를 캐내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대검중수부가 떴다 하면 내로라하던 한국 호랑이들이 도둑고양이처럼 움츠러들곤 했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시 주석과 엇갈린 행보를 걸었다. 선거에 임하면서 대검 중수부 폐지를 공약했고 당선되자 서둘러 실천했다. 권력자는 강력한 사정기관을 바탕으로 기강을 거머쥐고 정치를 해야 하는데 그 힘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중수부를 없애는 대신 대통령 친'인척과 국회의원 장'차관까지 특별감찰 대상에 넣는 특별감찰관제를 신설하기로 했다.
힘은 국회로 넘어갔다. 여'야 정치인들은 눈엣가시 같던 대검 중수부 폐지에 얼씨구 합의했다. 대신 중수부의 빈자리를 메운다며 특별감찰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면서 특별감찰대상에서 국회의원과 장'차관은 슬며시 뺐다. 기껏 수십 명에 불과한 대통령 4촌 친'인척과 청와대 수석 이상만 남았다. 본질과 동떨어진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마저 중수부가 폐지된 지 1년을 훌쩍 넘기도록 특별감찰관은 임명도 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시 주석이 호랑이 사냥을 하는 동안 우리나라에선 사정의 고삐를 바짝 죄었어야 할 취임 1년여 세월을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다.
살판난 것은 정치인뿐이다. 중수부 폐지에는 서둘러 합의했던 여'야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을 특별감찰대상에 다시 포함시키는 법안이나 공직부패방지법인 김영란법 통과엔 갖은 이유를 들어 미적거리고 있다. 이런 부패방지 시스템 부재의 결과물이 세월호 참사였다. 대한민국은 호랑이 한 마리 때려잡지 못했다. 부패 방지를 위해 날아가는 중국과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부패한 호랑이를 잡을 수 없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국회의원들은 달리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국민들은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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