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러시아 테마기행문] <1>신들의 심연에서 인류의 시원, 그리고 혁명을 보다

전설이 흐르는 바이칼 호수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큰 섬으로 제주도의 절반 크기라는 알혼섬을 상징하는 부르한 바위. 일명 샤먼 바위라고도 불린다. 이 바위로 가는 길목에는 갖가지 색의 천들이 8개의 나무 기둥을 휘감고 있다. 그 너머로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의 수평선이 펼쳐진다.
바이칼 호수에서 가장 큰 섬으로 제주도의 절반 크기라는 알혼섬을 상징하는 부르한 바위. 일명 샤먼 바위라고도 불린다. 이 바위로 가는 길목에는 갖가지 색의 천들이 8개의 나무 기둥을 휘감고 있다. 그 너머로 바다 같은 바이칼 호수의 수평선이 펼쳐진다.
알혼섬의 상징인 부르한 바위 초입의 자동차 진입 금지용 나무 담장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여행단 일행.
알혼섬의 상징인 부르한 바위 초입의 자동차 진입 금지용 나무 담장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여행단 일행.

매일신문과 대구작가콜로퀴엄이 공동으로 기획한 테마세계여행의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6월 27일부터 10일간 러시아를 다녀왔다. 대구-인천-이르쿠츠크-바이칼호수 알혼섬-이르쿠츠크-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인천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수천㎞에 이르는 대장정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비늘을 퍼덕거리며 튀어오르는 선어처럼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은 살아 있었다. 우리 일행이 알혼섬행 선착장에 섰을 때 여름의 바이칼은 서늘한 먹구름과 거친 파도로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으려 했다. 세계 최대 담수호, 길이 636㎞, 수심 1,742m, 과연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시원(始原), 가장 깊은 심연(深淵)이라는 말이 한낱 수사(修辭)가 아님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선객 중에 주술사라도 있는 걸까. 며칠 통행이 어려웠다는 바이칼의 바람이 눅어지고 파도가 잦아든다. 서둘러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우리 일행 31명은 바지선에 올랐다.

2만여 년 전 지구가 빙하로 얼어붙었을 때 아시아인 선조들에게 바이칼은 오아시스 역할을 했으니 우리 민족의 뿌리가 이곳이라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원주민인 부리야트인들과 우리의 생김새가 우선 닮았다. 또 DNA 유사성, 서낭당, 솟대 등의 샤머니즘 상징과 의미, 아기 탯줄을 문지방 아래 묻는 토속전통, 선녀와 나무꾼 설화, 함께 추는 강강술래와 흡사한 춤, 그리고 아바이 게세르(단군신화와 흡사한 서사시), 탱그리(단군)라는 말 등을 그들은 한 뿌리의 근거로 든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학설이다.

오물(Omul)이란 이름을 가진 고유 어종을 비롯해 물범과 곰, 사슴도 가끔 출몰한다는 제주도 면적의 반 정도, 바이칼 22개의 섬 중 가장 크다는, 제주도의 절반 크기라는 알혼섬은 그림 같았다. 성냥개비로 라디오 채널을 고정해둔 낡은 빵차(그래도 4륜구동)에 실어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듯 흰 길들이 그어진 초원의 후지르 마을에 일행을 부려놓고 섬사람들이 수줍게 덧니를 드러내며 웃는다. 장난감 상자처럼 일렬로 세워진 목초지의 숙소(등급은 별 4개와 5개의 중간)와 낮은 구릉들처럼 더없이 여유로운 사람들이다. 말갛게 얼굴을 드러내는 햇살이 풀을 뜯는 소들과 목책 아래 자잘한 풀꽃들, 그리고 저 섬사람들과 신들이 함께 사는 세계에 닿은 우리를 축복하듯 반짝거린다. 말을 달리거나 하릴없이 풀밭에 앉아 하늘과 바이칼을 보던 이들이 이윽고 유르트(몽골의 게르, 천막집)에 하나둘 모여들고 우리는 백야의 일몰을 맞이했다.

초승달 모양 바이칼을 그대로 빼닮은 알흔섬은 몽골의 시원지이며 샤먼의 성지다. 칭기즈칸이 묻혔을지도 모른다는 신성한 부르한 바위 주변엔 색색의 자아라(소원을 비는 천)가 매달린 솟대들이 늘어서 있다. 무당집 주변의 풍경이다. 몽골의 여시조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이 바위를 시원지로 삼았고 그 일족 일부가 동남쪽으로 이동하여 부여와 고구려를 세웠다고 부리야트인들은 주장한다. 이곳에서 또 몇 년마다 세계샤먼축제가 열린다고 하던가. 흔히들 하는 말로 신기(神氣)가 가득한 곳이다.

원시성이 가득한 알혼섬에서 하루를 보낸 일행은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벌판과 스텝을 지나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로 되돌아간다. 스텝에서 가끔 만나는 숲과 공기의 정령들이 우리를 배웅하는 듯 몸피가 흰 자작나무 작은 잎들을 흔들어댄다. 자작나무 숲이 끝나는 곳은 푸른 초원과 때를 만난 노란색의 들꽃들로 가득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로 가는 필수 경유지이며 중국과 몽골의 교역지, 그리고 대학이 30개나 있는 교육도시로 이름난 시베리아의 중심도시다.

이르쿠츠크는 1615년 시베리아 정복에 앞장섰던 카자크 부대가 앙가라강 하류에 세운 야영지로 러시아에 편입되어 1686년 도시로 승격했다. 제정러시아의 압제가 극에 달한 19세기에는 유배되어온 데카브리스트(Decembrist'1825년 12월 차르에 대항하여 근대적 혁명을 꾀했던 청년귀족 장교들. 데카브리는 러시아어로 12월)와 뒤따라온 그들의 아내와 가족들에 의해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며 파격적인 문화예술적 변신을 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의 강진, 추사 김정희의 제주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귀족 출신이었던 데카브리스트 청년 장교의 아내들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귀족으로 새 삶을 살 것이냐 남편을 따라 혹한이 기다리는 유배지로 갈 것이냐의 기로에서 대부분 남편과의 시베리아행을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특히 주동자였던 세르게이 투르베초코이와 발콘스키 공작의 집은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부인들의 순애보와 그 가열한 정신의 기록들을 공개하고 있다.

이르쿠츠크는 1917년 일어난 러시아혁명 당시 콜차크 제독이 이끄는 반혁명 백군이 볼셰비키 적군과의 격전에서 패한 곳이다. 콜차크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많은 러시아 황실의 보물을 가지고 얼어붙은 바이칼을 건너 도망가던 백군 귀족과 가족들이 동사해 그대로 수장되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샤머니즘과 러시아 정교가 추구하는 전통양식과 유럽의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시베리아 바로크' 형식의 즈나멘스키 수도원 앞에는 최근에 세운 콜차크 제독의 동상이 서 있다. 승자가 아닌 패자의 동상도 세워주는 이곳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진다.

저녁 9시, 이르쿠츠크주 청사가 있는 키로프 광장을 지나 아직도 해가 떠 있는 백야의 앙가라 강변을 걷는다. 나무들도 사람들도 모두 생기로 빛이 난다.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무대이기도 한 이곳 이르쿠츠크.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가 어느 길목에선가 나를 향해 금방이라도 걸어 나올 듯하다.

뜨거운 빛을 피해 손차양을 하고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최초로 지구를 벗어난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의 동상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가 한 말을 떠올린다. '지구는 푸른 색의 별이다.'

박미영 (시인·작가 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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