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보다 더 반기는 치킨 배달부의 딩∼동∼

대한민국 치킨전(展)/정은정 지음/따비 펴냄

나이도 미각도 제각각인 여러 명의 동료들이 가볍게 한잔하려고 할 때 가장 무난한 안주는 무엇일까?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함께 먹어도 별 이견이 없는 배달요리는 무엇일까? 가격으로 봐서도 양으로 봐서도 별 불만이 없을 음식은? 사람마다 다른 입맛을 고려해 같은 재료임에도 여러 가지 소스를 이용해 제각각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재료는 무엇일까?

답은 '치킨'이다.

후라이드 치킨, 고추장 양념, 간장양념, 파닭, 마늘치킨 등 메뉴도 다양하다. 딱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고 그렇다고 2마리를 시키자니 부담스러울 때는 '반반'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쓸 수도 있다.

이 책 '대한민국 치킨전'은 1997년 이후 외식 메뉴 1등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는 '치킨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책이다.

지은이는 "(한국사회에서) 치킨은 닭고기를 조각내 기름에 튀긴 음식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닭튀김이라는 말로도 튀긴 닭이라는 말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치킨은 단순히 '고기를 조각내 튀긴 닭' 이 아니라 산업, 문화, 웃음, 눈물, 비애, 기쁨, 축제가 배어 있다는 것이다.

치킨의 정착과 성공은 한국의 산업과 깊은 관계가 있다.

치킨은 백숙이나 삼계탕과 달리 처음부터 외식 메뉴로 정착했다. 외식 메뉴가 되자면 닭이 귀한 재료가 아니어야 한다. 농가에서 달걀을 얻기 위해 한두 마리씩 닭을 키우는 방식이었다면 '외식 메뉴'가 아니라 '잔치메뉴' 가 되었을 것이다. 치킨의 성공은 전용 축사에서 수천, 수만 마리를 키우는 산업형 축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는 물론 1960년대 우리나라에 복합사료공장이 세워진 덕분이다.

치킨 고유의 맛을 내는 데는 기름이 필요하다. 비록 조각냈다고 하지만 닭을 솥에 넣고 튀겨낼 만큼의 풍부한 식용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의 곡물복합체가 대량 생산한 콩이 국내에 싼값으로 들어왔고, 국내의 식품기업이 식용유를 값싸게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두에서 식용유를 추출하고 남은 대두박은 가축에게 먹일 사료로 쓰였다. 특히 닭이 대두박 사료를 많이 먹었다. 그러니 우리가 먹는 치킨은 콩을 사료로 살을 찌우고, 콩기름에 튀겨진 '콩닭'인 셈이다. 근래에는 콩보다 옥수수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옥수수 씨눈에서 기름을 짜내 닭을 튀기고, 남은 옥수수는 닭의 사료로 쓰인다. 양념 치킨의 핵심 재료인 물엿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니 치킨 산업 초창기 '콩닭'은 시간이 흐르면서 '콘닭'으로 진화했다.

치킨 시장은 그야말로 전장이다.

치킨 프랜차이즈 대한민국 1위 업체도 전체 시장 점유율이 10%를 겨우 차지한다. 그러니 브랜드 간의 경쟁은 그야말로 전쟁 수준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최전방의 치킨집 '사장님'들은 본사 눈치 보랴, 알바생 눈치 보랴, 고객 눈치 보느라고 죽을 맛이다.

배달부는 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아파트 단지를 누빈다. 딩동 초인종 소리에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일어나 문을 연다. 퇴근한 아빠보다 치킨 배달부를 더 반가워하는 지경이다. 그런가 하면 치킨은 맥주를 부르고, 맥주는 치킨을 부른다. 치맥축제는 그렇게 탄생했다. 치킨은 한국의 산업을 통해 탄생했고, 이제는 한국 산업을 지탱하는 한 축이 되었다. 책은 '치킨은 축제의 음식이자 땀과 슬픔의 음식이며, 대한민국 산업의 현주소이자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된 치킨의 세계'를 낱낱이 보여준다. 288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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