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토요일 오전 대구의 두 공중파 TV는 '이우환 미술관'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방송으로 내보냈다. 두 방송사가 같은 날 거의 같은 시각에 같은 주제의 토론회를 갖는 것 자체가 퍽 이채로웠다.
이날 제일 눈길을 끈 것은 이우환 화백의 전화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 화백은 "대구시민들이나 그걸 추진하는 시 쪽에서도 정말 열정과 프라이드를 갖고 하고 싶다면 하시고 의문이 있다거나 하기 싫으면 당장, 가능한 대로 빨리 그만두기를 바란다"고 했다. 굳이 이 발언에 대한 해석을 달고 싶지는 않다. 자존심이 확 상하는 것도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대신 지난해 이맘때 있었던 이 화백의 부산 발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화백은 부산시청서 열린 이우환 갤러리 건립 발표 회견장에서 "저의 (작품세계의) 정수를 보려면 부산에 와야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대구시가 이우환 미술관 건립을 한창 밀어붙일 때였다. 그때 대구시는 쉬쉬했다. 경쟁자가 있는 유치 작업의 성격상 비밀은 불가피하다고 구차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그건 대구만의 오판이자 착각일 뿐이었다. 이우환과 이 화백의 작품에 대해 대구만이 갖는 독점적'배타적 권리는 눈곱 만큼도 없다. 부산에도 광주에도 이우환은 있다. 대구만의 이우환은 아닌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대구가 이우환 미술관을 짓기로 결정한 것은 2010년이다. 지금까지 4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이 화백은 이 미술관에 대해서는 자신의 작품을 몇 점 전시할지 등 어떤 구체적인 구상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초 이 화백과 미술관 설계자인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 그리고 대구시가 서명했다는 약정서 한 장이 전부다. 계약서도 아닌 약정서다. 그나마 이 약정서에도 알맹이는 없다. 미술관의 이름을 '이우환과 그 친구들'로 한다는 것과 설계는 안도 다다오가 맡는다는 것 정도다. 4년 동안 대구시가 한 일이다. 그러다 지난 3월 말 설계 발표회라는 걸 했다. 물론 내용은 부실했다.
또 이 화백이 '친구'로 누구를 데려올지 빨리 결정을 해야 설계를 하고 계획된 일정에 오픈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바로 대구시였다. 그런데 누가 오는지, 무슨 작품이 전시되는지 정해진 것도 없는데 안도라는 건축가는 설계부터 했다. 다음 달이면 설계는 완료다. 작가별로 전시실 하나를 제공한다는데 설계에 따라 작품을 꿰맞추겠다는 것인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이에 대한 설명도 없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이 미술관을 짓자는 인사들의 주장이다. "이 화백의 양심과 인격을 믿으면 된다"고 한다. 시민의 세금과 나랏돈 수백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이 미술관의 알맹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구름 잡기다. 미술관이든 박물관이든 껍데기보다 내용물이 더 중요한데 이 미술관에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과연 몇 점이나 전시할 수 있을지 알려진 게 없다. 대구시는 이 화백의 네트워크를 통해 대륙을 대표한다는 세계적인 거장들에게 재료비 정도만 주고 작품을 가져 온다고 했다. (대구시는 구입도 아니고 기증도 아니라고 했다.) 가능이나 한 일인지. 이들의 작품 경매가는 수십억 원을 넘는데.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추진하겠다는 대구시가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이번이 처음이라면 속겠지만 처음이 아니다. 대구미술관이 그랬고, 시민회관도 역시 그랬다. 하는 일마다 그랬다. 저질러 놓고 뒷수습을 제대로 못 했다. 그런 사례는 많다.
그 파편은 사방으로 튀어 상흔을 남긴다. 후유증도 심각하다. 모자라고 없어서 병아리 눈물만큼 찔끔찔끔 써야 하는 문화예술 관련 예산의 상당액을 잘못된 행정, 무리한 사업의 뒷수습에 투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우환 미술관이 제대로 지어지고, 팽팽 잘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원점 재검토라는 권영진 대구시장의 인식과 지적은 옳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해진다. 당연히 스톱이다. 설계비로 이미 들어간 돈 18억 원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치자. 400억 원 이상 들여 우환거리를 하나 더 만드는 것보다는 18억 원만 날리는 게 훨씬 낫다. 대구의 체면은 이미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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