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슴에 있는 사람

7월 어느 해 여름이었던가. 인터넷으로 가구 주문 받은 것을 트럭에 싣고 남해로 배송 나가던 우리 부부는 가까운 순서대로 배송을 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고 없던 소나기로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목재가구가 젖을세라 뻐덕뻐덕한 '가빠'를 꺼내서 덮고 걷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예사롭지 않은 기후 속에서 약속 배송이 늦음에 대한 항의가 전화기 속에서 빗발쳤다. 그 와중에 운전석 차 문마저 고장이 났는지 주위의 장정들 대여섯 명의 힘을 빌려 잡아당겼지만 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일이 훨씬 더뎠다.

이제 마지막으로 경남 사천에 두 건의 주문 고객이 남아 있는데 내비게이션마저 말을 잘 안 들어 한 집을 찾았을 땐 이미 한밤중이었다. 가구를 도로 가져가라며 항의하는 그 고객에게 사정사정하여 간신히 들여놓고선 마지막으로 한 교회를 찾아가는데 내비게이션은 불통이고 칠흑 같은 빗길 속에서 헤매던 중, 해당고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당연히 한 소리 들을 각오하고 무조건 잘못했다는 표시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죄송합니다"라고 했더니 "우리는 늦어도 괜찮으니 빗길 조심해서 천천히 오십시오"라고 했다. 어머 이럴 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객이 일러준 대로 찾아 골목에 들어서니 젊은 내외분이 마중 나와 손을 흔들며 "먼 길 초행길 찾아오시느라 참 힘드셨지요"라고 하질 않는가. 늦은데 대한 원망은커녕 손님처럼 따뜻이 맞아주는데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송장에는 목사님이라 적혀 있던데 목사님은 주무세요"라고 물었더니 그 젊고 멋진 분께서 호탕하게 웃으시며 "바로 저랍니다"하지 않는가. 목사님이라 해서 중년은 훨씬 더 되었거니 생각을 했었는데 그야말로 청년으로 보였다.

가구운반까지 함께 거들어주어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차 안에 남아있는 사과 한 개를 쑥스러워하며 내밀었더니 "마음 감사하게 잘 받겠습니다"라며 받아 쥐고는 잠깐 기다려 달라하더니 다시 나올 때는 농사지은 사과라면서 크고 탐스러운 사과 두 개를 손에 들려주었다. 돌아 나오는데 교회당의 불빛이 어찌나 환하고, 살아 흐르는 피처럼 따스하던지, 하나님이 계신다면 바로 저분들 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불교신자인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가슴에 감동으로 지니며 살고 있다.

하여 한 번은 꼭 내 집으로 초대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 멋진 분들이 환하게 내 집에 발을 디딜 때에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구처럼,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할 뿐 아니라 내 그를 맞아 두 손을 함빡 적셔도 좋지 않겠는가!

박숙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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