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명태-김주대(1965~ )

살아 있을 동안 너는 어떤 이름으로도 살지 않았다

물결의 부드러운 허리를 물고 힘차게 지느러미를 흔들던

너는 푸른 파도였고 끝없는 바다였다

수평선 위로 튀어오르는 무명의 황홀한 빛이기도 하였고

어느날 명태, 라는 이름의 언어가

너의 깊은 눈에서 바다를 몰아내고 파도인 너를 음식으로 만들어버렸다

그후로 너의 입과 눈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였다

명태라는 이름은 너의 주검을 요리하고 싶은 욕망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호명에는 음흉한 욕심이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누가 벗이여, 라거나 사랑해, 라고 말하는 것이

그 죽음을 제 입맛에 맞게 요리하고 싶다는 얘기는 아닐는지

- 시집 『그리움의 넓이』 창비, 2012

노자의 '도덕경' 첫머리에 道可道非常道名可名非常名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부분을 이경숙은 이렇게 번역했다. '도를 도라고 불러 되겠지만 늘 도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사물의 이름은 지금의 이름으로 불러도 되겠지만 늘 그렇게 부를 필요는 없다.' 도라는 말에 대한 정의다. 언어에는 자의성(恣意性)이 있기에 그 이름이 항상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물의 의미를 규정하거나 그 의미를 확정하는 기능이 있다. 김춘수는 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꽃이라는 사물에 꽃이라는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꽃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동해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인 명태도 처음에는 이름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명태라고 불렀을 때는 그것에 음식이라는 의미가 부여된다. 사람이 언어를 사용하고 그 언어로 대상을 호명하는 행위는 사람의 욕망이 개입된다는 것을 시인을 사유하고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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