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군도:민란의 시대

탐관오리 착취에 대항하는 조선 의적의 운명…하정우·강동원 스타 스펙터클 액션

이번 주부터 시작하여 한 주씩 차례로 한국영화 대작들이 속속 개봉하며 극장가는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번 주에 조선말 의적 떼를 다룬 '군도: 민란의 시대'가 먼저 선보이며, 2014년 한국영화 빅4의 경쟁의 서막을 알린다. 30일에는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명량'이, 8월 6일에는 한국의 '캐리비안의 해적'을 꿈꾸는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이, 8월 13일에는 봉준호 감독이 제작에 나서며 화제가 된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스릴러 '해무'가 차례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네 작품 모두 상당한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영화다. 한국영화는 최근 2년간 연속 1억 명 관객을 기록하며 산업적 전망을 밝게 했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년 상반기 한국영화 점유율은 43%로 지난해 56.4%에 비해 대폭 하락하며 위기감의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역린' '인간중독' '우는 남자' '하이힐' 등 남자 스타 배우를 앞세운 상반기 화제작들이 흥행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는 가운데 '군도: 민란의 시대'가 새로운 전환점의 포문을 열지 주목된다.

'군도'는 흥행에 필요한 요소들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다. 하정우와 강동원이라는 스타 배우들의 대결,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시대를 풍성하게 재현하는 스펙터클 액션 사극, 150여억원의 제작비로 이루어진 화려한 볼거리, 전작 '범죄와의 전쟁'으로 신뢰를 쌓은 윤종빈 감독,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윤지혜, 정만식, 김성균 등 믿고 보는 조연들의 활약 등, 일단은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든다.

영화는 조선의 의적에 관한 실제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 왕실이나 지배층 내부의 권력 다툼이 아닌 백성, 민초의 시각에서 조선을 바라본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 초까지 실존했던 의적 떼인 군도 지리산 추설에 대한 기록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는 가진 자와 빼앗기는 자라는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대결 구도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양극화와 계층 고착 구조를 투영한다. 착취와 억압은 증오와 분노를 낳고, 이에 대적하는 약한 자들의 연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이 위에 홍콩 무협영화, 스파게티 웨스턴, 타란티노 식의 유혈 유희가 버무려져 형형색색으로 찬란한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과연 그 비빔밥이 잘 섞여서 감동적인 맛을 관객에게 선사할까?

때는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 1862년이다. 제3자 내레이션이 시대적 배경을 들려주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그의 살아온 이력을 정리해주는데, 이는 역사적 기록의 실제성을 더욱 생생하게 하는 효과를 낳는다. 백성들의 삶이 날로 피폐해져 가는 사이, 나주 대부호의 서자이며 조선 최고의 무관인 조윤(강동원)은 극악한 수법으로 양민들을 수탈하여 대부호로 성장한다. 한편 근근이 살아가는 천한 백정 돌무치(하정우)는 끔찍한 일을 당한 뒤 군도에 합류하여 지리산 추설의 거성 도치로 거듭난다. 망할 세상을 뒤집기 위해, 백성이 주인이 되는 새 세상을 향해 도치를 필두로 한 군도는 백성의 적 조윤과 한판 승부를 펼친다.

영화는 법도 도덕도 없고 온갖 악행이 판을 치는 엉망진창인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 프로덕션 디자인에 공을 들였다. 투박하고 거친 질감과 두터운 색채감을 통해 혼란의 시대 민중들의 삶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거친 피부와 튼 입술, 땟물로 뒤집어쓴 얼굴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 깊다. 백성들은 땅에 발을 디디고 선 현실감을 보여주는 반면, 대부호 조윤이 등장할 때면 영화는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서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멸시의 대상이었던 조윤이 용서할 수 없는 악인이 된 것은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악인에게도 정당한 이유를 부여한다. 조윤은 가늘고 고운 선,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 길게 뻗는 몸, 절대 능력을 가진 칼솜씨를 가지고 있다. 조윤이라는 캐릭터가 지닌 비극성은 배우 강동원의 스타 페르소나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영웅 도치보다 악당 조윤의 스크린 장악력이 더 강해서 어쩌면 용서할 수 없는 악당이 더욱 추앙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낳게 한다.

영화는 각자 기구한 사연을 가진 다수의 캐릭터들을 소화하다 보니 자칫 소화불량에 걸릴 정도로 과하다. 그리하여 전반부가 늘어지며 도입부로 넘어가기까지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이야기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진다. 다이내믹한 액션 장면에 비해 선악의 대결구도가 밋밋하다는 인상을 준다. 볼거리를 이야기가 따라가지 못한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는 훌륭하였지만, 이를 조화로운 맛있는 밥으로 비벼내기에는 버겁게 느껴진다.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와 2013년 '관상'의 메가톤급 흥행 성공을 확인한 후, 흥행을 위한 대작영화 공식으로 사극 장르 컨벤션 활용과 멀티캐스팅은 기본적인 요소가 된 듯하다. 앞으로 공개될 '명량'과 '해적' 역시 사극과 멀티캐스팅을 바탕으로 한다. 적어도 500만 관객이 영화를 봐야 본전이 가능한, 위험요소가 큰 프로젝트다. 하지만 성수기 때마다 천만 관객 영화가 줄줄이 나오는 한국영화산업 현실에서 크게 투자해서 크게 수익을 남기는 것은 메이저 영화사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군도'는 첫선을 끊는 만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다. 방학 시즌 첫 대작이므로 많은 관객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영화를 본 관객의 입소문 결과에 따라 곧바로 승부를 보게 될 것이다. 관객은 계속해서 개봉되는 대작영화들로 인해 대안을 손쉽게 선택할 터. 올여름 대작영화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지 그 어느 해보다도 궁금해진다.

정민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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