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캠피아'로는 개혁 못 한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때, 개인적으로는 이회창 후보가 되길 바랐다. 정치에는 무관심했고, 당시의 한나라당에 대한 묻지 마 투표 성향은 더욱 아니었지만, 이 바람의 바탕은 혼자만의 단순한 기준 때문이었다. 물론 판사와 대법관, 국무총리 때 그가 보인 '대쪽 이미지'가 판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더 컸던 것은 그가 정치 초년생이라는 점이었다. 정치권에 몸담은 지가 얼마 안 됐으니 당연히 도움을 받은 사람이 적을 것이고, 이는 곧 대통령이 됐을 때 챙겨야 할 사람도 적다는 뜻이니 사심 없이 일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아주 소박한 기대감이었다.

7월 1일, 새 자치단체장이 임기를 시작했다. 대구'경북은 재선, 3선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대구는 대구시를 비롯한 동'서'북구청, 경북은 23개 시군 가운데 7개 시군이 새 자치단체장을 맞았다. 새 리더에 대한 기대는 누구나 크다.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무어 다를 게 있을까 싶다가도 새로운 리더 체제가 들어서면 어쩔 수 없이 또 기대를 하는 것이 사람 심리다. 아마 새 자치단체장을 맞은 시'도민의 요즘 심정이 그럴 것이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이들을 평가하기는 분명히 이르다. 그러나 벌써 여기저기에서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번에도 '역시나'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 때마다 반복하는 고소'고발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예의 논공행상(論功行賞)도 여전하다. 이번 선거에서 '혁신'과 '개혁'을 내세우지 않은 후보자는 거의 없었지만, 선거가 끝나기가 무섭게 신세 갚기의 구태를 되풀이하는 셈이다.

문희갑, 조해녕, 김범일 전 시장에 이어 4번째로 당선된 권영진 대구시장은 올해 52세로 1995년 민선 이후 역대 최연소 대구시장이다. 한나라당 때 정치에 입문해 잠시 서울디지털대 교수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것 외에는 계속 정치권에 머물렀다. 뼛속 깊이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젊은 층의 리더로 개혁파였고, 이번 선거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개혁을 주창했다.

당선된 이후 보인 행보도 여느 시장과 조금은 달라 보인다. 예산 확보를 위해 세종시의 여관방에 머물면서 중앙부처 공무원과 스킨십을 하고, 길 위 의자에서 시장 상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또, 구청장'군수와의 첫 정책협의회를 국밥집에서 열기도 했다. 이 행보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활력 넘치는 젊은 새 시장의 의욕적인 모습임은 틀림없다. 또한, 앞으로 4년 임기 동안 이런 모습을 보일 것임도 믿는다.

그러나 자리와 관련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권 시장의 모습은 이와 조금 다르다. 캠프 출신 인사 중용설이 많이 떠돌아서다. 그냥 시중에 떠돌아 권 시장과는 전혀 관계없을 수도 있고,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아 노파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권 시장의 첫 인사였던 비서실장과 정책보좌관이 모두 캠프 출신이고, 최근 거론되는 몇몇 공모직에 캠프 출신 인사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말만은 아닌 듯하다.(민선 이후 경북도지사 비서실장을 지낸 11명 가운데 캠프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대구시장이 공무원 외에 임명 또는 임명 승인 등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모직은 40여 개다. 이 자리는 임기 계약제여서 중간에 인사이동이나 계약 해지가 어렵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권 시장이 입버릇처럼 말한 개혁은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관피아 낙하산은 말할 것도 없고, 캠피아(선거 캠프 출신+마피아)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전문가가 있다 하더라도 캠프 출신은 안 된다. 주변 사람을 먼저 쳐야 개혁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이다.

도움 준 사람에게 신세를 갚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능력보다는 이해관계와 혈연'지연'학연이 먼저인 선거판은 조금 다르다. 권 시장의 됨됨이와 능력을 보고 도왔다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고, 어떤 것을 바라고 도왔다면 진정성이 없다. 권 시장은 6월 30일까지는 정치인이었지만 7월 1일부터는 250만 시민을 대표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고, 철저한 개혁을 진두지휘해야 할 대구시장이다. 함께 고생한 캠프 식구를 모른 척하는 것은 당연히 고통스럽겠지만, 고통 없고 피가 흐르지 않는 개혁은 없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