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 7월'이라더니 비가 오락가락하는 장마철에 별로 하는 일 없이 어정버정하다가 한 달이 훌쩍 지나는 느낌이다. 바쁜 6월을 보낸 마을 사람들이 오랜만에 아침부터 정자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부추전을 부치고 막걸리가 나오고 참외와 자두 같은 과일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 밀린 이야기로 웃음잔치가 한창이다. 우리 마을은 포도가 주 작목이다. 올해는 날씨가 좋아서 포도 수확이 다른 해보다 이르다고 한다. 포도를 밭째로 사려는 중간상인들이 마을을 들락거리고 사람들의 얼굴빛이 환해지는 것을 보니 은근히 부러워진다.
요즘은 새벽 5시면 날이 밝기 때문에 늦어도 6시에는 일어나서 마당에 나온다. 밤새 별일이 없는지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본 남편이 텃밭으로 나가 작물을 돌보는 사이 나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반찬이 될 만한 채소를 찾아다닌다. 오늘은 뒷마당에서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어린 호박잎을 따왔다. 호박잎을 찌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감자채를 볶아서 갓 담근 열무김치를 꺼내면 우리가 먹을 '시골밥상'이 완성된다. 가끔 삼겹살을 사서 구워먹거나 생선 한 마리를 더하면 진수성찬이다. 애호박이 보이면 따서 볶아먹고, 오이가 있으면 무쳐 먹는다. 밭에서 거두는 재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요새 우리는 늘 이렇게 채소 위주의 밥상을 차려 먹는다.
어제는 달이 밝다는 핑계로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이 마을로 이사 온 하림이네로 늦은 마실을 갔다. 마침 와 있던 다른 이웃분들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11시가 훌쩍 넘는다. 나눠 마신 맥주에 마음까지 불콰해진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제 농사 안 지으렵니다. 빈 밭에 나무나 몇 그루 심어놓고 말지!" 한다. 빨갛게 익어야 할 고추가 익기도 전에 썩어서 떨어지는 것이 속상해서 하는 말이다. 하림이 아빠도 그런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그럽시다, 우리 이제 농사 짓지 맙시다"라며 맞장구를 친 뒤에 하하 웃으며 우리 부부를 배웅한다.
누가 쫓기라도 하듯 바쁘게 들어온 시골 생활이 1년하고도 절반을 더 채웠다. 청소를 하기 위해 작은 방 창문을 열면 뒷집 미용 씨네 소들이 호기심 어린 눈을 끔벅이며 쳐다본다. 눈이 마주칠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소들을 볼 때마다 내가 사는 곳이 시골이라는 걸 절감한다. 우리는 왜 시골로 들어온 것일까? 소들의 끊임없는 되새김질을 보면서 나 역시도 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곤 한다.
남편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시골로 이사 온 일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늦은 시간에 들어와도 주차할 장소가 있고, 아무 때나 청소기를 돌려도 층간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이곳 생활이 좋다고만 말한다. 인스턴트 음식을 싫어했던 남편은 채소로 차려지는 요즘의 상차림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시골 생활이 다 좋을 수만은 없다. 자급자족할 만큼의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는 마트나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보다 몇 배나 더 고단한 수고가 필요하다. 주거공간이 넓어져서 편리하고 좋지만 정리정돈할 시간과 일감은 그만큼 더 늘어났다. 대부분의 대리운전업체가 우리 마을까지 들어오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부부가 함께 나가서 한쪽이 운전을 하지 않는 이상 시내의 술자리는 피할 수밖에 없다. 동전의 양면 같은 장단점이 이곳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복잡한 도시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기보다는 조금 불편해도 조용하고 넓은 공간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고 싶어서 우리는 시골로 들어왔다. 나무 한 그루도 새로운 땅에 심어지면 몸살을 앓는다고 한다. 그 몸살이 가라앉았는지 지금처럼 텃밭을 가꾸고 동네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며 지내는 일상이 어느새 편안해졌다. 원래부터 이곳이 고향인 듯 아침저녁으로 강아지 먹이를 챙겨주고, 마당에 앉아서 풀을 뽑고, 장독 뚜껑을 열어 된장 익어가는 냄새를 맡아보는 내 모습이 자연스럽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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