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수단이다. 번 돈으로 사업을 하든지 자선사업에 쓰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경제력도 하나의 권력이기에 많은 사람이 이를 움켜쥐려 힘을 쏟는다. 그러나 국가는 개인과 비교해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부국 없이 강병은 매우 어렵다. 경제력에 상응하는 군사력으로 전환하지 않는 나라는 중립국 스위스처럼 극소수에 불과하다.
중국은 지난 20여 년 간 거의 두 자릿수에 육박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2010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등극했다. 중국은 두둑한 돈주머니를 갖고 군사력을 증강했고 국제정치경제 분야에서도 새로운 틀 짜기에 한창이다.
대표적인 게 중국이 주도적으로 추진 중인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sia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AIIB)과 브릭스개발은행(BRICS Development Bank'신개발은행)이다. 겉으로 보기엔 이 두 은행 모두 개도국과 후진국을 지원해주는 다자 은행으로 설립되면 국제정치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듯하다. 그러나 국제관계를 제로섬의 게임으로 보는 현실주의적인 시각에서 보면 우려할만한 일이다.
AIIB는 아시아에서 인프라 건설을 지원해주는 게 목적이다. 중국은 지난달 상하이에서 여러 국가를 초빙해 이 은행의 건립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 은행은 약 1천억 달러의 자본금을 목표로 한다.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을 포함하여 약 22개국이 이 은행에 관심을 보여 중국은 일부 국가들과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현재 아시아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은행은 아시아개발은행(ADB)이다. 일본과 미국이 각각 1, 2대 주주(15.7%, 15.6% 지분율)인 반면 중국의 지분은 5.5%에 불과하다. 중국이 지분을 늘리고 싶어도 일본과 미국이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미국 주도의 ADB와 경쟁하는 또 하나의 개발은행 설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말레이시이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은 지금부터 2020년까지 연간 8천억 달러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데 현재는 연간 100억 달러 정도만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ADB는 추정한다. AIIB가 설립되면 중국은 이를 주도하면서 외교정책의 도구로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 가운데 중국의 지원에 크게 의존해온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남중국해 영토분쟁에서 중국의 입장을 계속하여 지지해 왔다. 중국이 왜 AIIB 설립에 주력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이 브릭스개발은행 설립에 노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5개 신흥 경제국(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들은 2년 전에 이 은행의 설립에 합의했다. 이달 15일부터 이틀간 브라질 남부 해안도시 포르탈레자 시에서 열린 6차 브릭스정상회담에서 초기 자본금 500억 달러 규모의 브릭스개발은행 설립이 구체적으로 합의되었다. 또 5개국들은 1천억 달러의 위기대응기금 설립도 합의했다.
미국 등 서방선진 7개국(G7)이 주도해온 국제정치 경제 질서를 비판하면서 신흥국이 적극 참여하는 질서를 주창해 온 게 브릭스다. 브릭스개발은행은 미국과 유럽 국가가 주도해온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도전장을 냈다. 브라질 언론이 두 개발은행을 각각 브릭스의 세계은행(World Bank), 국제통화기금(IMF)이라 규정한 것은 5개국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중국의 시진핑 국가 주석이 이달 3일부터 이틀간 우리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에게 AIIB의 참여를 요청했다. 미국은 우리의 참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이다. 일단 우리는 이 은행의 설립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지분에 따른 의사결정 참여 정도를 보장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와 유사한 입장을 지난 참여 희망국들과 협력하여 중국이 구상 중인 정책결정의 틀이 최대 주주에 너무 치우쳐 있다면 이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아시아개발은행을 포기하거나 등한시하는 게 아니라 이 기구의 역할이 부족하기 때문에 새로 설립될 기구에도 설립 협상부터 참여하여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안병억/대구대 교수·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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