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通]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 정신 상담 정운선 교수

책임 떠넘기는 어른들 기본조차 모르는 당국 외로운 싸움이었어요

지난 4월 16일 경기 안산시의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293명을 포함한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인천을 떠나 제주도로 가던 중 진도 해역에서 침몰했다. 26일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102일째 되는 날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슬퍼했고 분노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아직 없다. "세월호를 잊지 말자"고 했던 다짐도 세월이 지나면서 세월호처럼 점점 가라앉고 있다.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냐"라고 타박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에 살아 돌아온 단원고 학생들과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슬픔을 같이 느껴 준 사람이 있다. 학생정신건강지원센터장 정운선 교수(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는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 날부터 5월 28일까지 단원고에 있으면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뿐만 아니라 충격에 빠져 있을 단원고 학생 전체의 상담을 도맡았다. 다시 대구로 돌아온 정 교수는 이번 사건을 맡으며 "A부터 Z까지 기본을 지킨 사람도, 기본을 알고 있었던 사람도 없었기에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정말 외로운 싸움을 해야 했다"며 "이전 건보다 훨씬 긴장한 탓에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들어갔다"고 말했다.

◆자살을 꿈꾼 학생이 희망을 얻다

정 교수는 기자에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단원고에서 정 교수에게 상담을 받은 한 학생의 편지를 보여주었다. 이 학생은 단원고 3학년 학생으로 자신의 추천으로 단원고를 선택한 동네의 친한 동생이 세월호 침몰로 목숨을 잃자 "동생이 죽은 게 내 탓"이라며 심하게 자책하며 자살을 생각하던 학생이었다. 편지에는 "처음에는 후배가 죽었는데 나 혼자 살자고 상담을 받는 것 같아 죄책감이 컸다"며 "선생님 덕분에 많이 나아졌고 내가 힘들 때 많은 사람이 도와주려 한다는 사실에 힘을 얻었다"고 쓰여 있었다.

"충격이 컸었던 모양이에요. 게다가 이 학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왕따를 당했던 전력이 있어서 이 부분에 대한 치료도 필요했어요. 처음에는 텁수룩하니 긴 머리를 하고 왔기에 '일단 머리부터 단정히 하자'는 미션 아닌 미션을 줬어요. 그 뒤로 이 친구의 아픔이나 슬픔을 들어주고 이겨내는 방법들을 이야기했더니 지금은 많이 밝아졌어요."

이미 마음을 크게 다친 단원고 학생들에게 정 교수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지만 학생들은 정 교수의 도움 덕택에 조금씩 삶의 희망을 되찾았다. 정 교수는 "'선생님의 노력 때문에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교수도 끝끝내 구하지 못한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세월호에서 구조된 뒤 죄책감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 단원고 교감 강모 씨였다.

"당시 선생님들은 심리치료가 필요한데도 거의 방치되다시피 했어요. 구조된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 또한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지만 그걸 느낄 새도 없이 맡은 업무를 처리해야 했거든요. 게다가 교육청과 같은 상위기관은 이 부분을 전혀 신경 써주지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교감선생님의 극단적 선택이 제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무지와 불신과의 외로운 싸움

정운선 교수는 "어른들의 무지와 불신으로 아이들의 심리적 상처를 치료할 골든타임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특히 자꾸 책임을 이리저리 떠넘기는 교육 당국의 태도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

"세월호 사건 후 가정통신문을 작성했어요. 하나는 현재 상황을 알리는 통신문이었고, 하나는 아이들이 충격받지 않도록 부모님들이 교육하는 방법을 적은 것이었죠. 하지만 교장, 교감선생님이 없어 결재를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발송을 못 했어요. 경직된 체계가 아이들의 심리를 치료할 적절한 시기를 놓치게 만든 한 예시지요. 게다가 7월 1일부로 단원고에는 학생들의 심리상담을 책임질 스쿨닥터가 배치됐어요. 하지만 스쿨닥터에 대한 인건비 지급을 교육청에서 미루고 있어요. 교육청 소속 장학사와 상담교사 팀장도 재난상황 때 심리개입 원칙을 잘 모르고 따지는데다 제가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들으려하지 않더군요."

지난 4일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보안이 요구되는 학생들의 심리검사 결과를 공개하라고 요구한 일이 있었다. 정 교수는 "어렵게 이야기를 털어놓은 아이들의 말이 이렇게 공개된다면 누가 아이들의 상처를 책임지겠는가"라며 "정신건강 분야에 대한 무지가 불러온 요구조건이라 특별위원회에서 많이 다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정 교수도 만만치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상황에서 저는 단지 '도움을 주는 전문가'일 뿐이었어요. 아이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눈에 계속 띄는 데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게다가 담당 공무원들은 보고체계만 신경 쓰고 현장에 있는 상담의사들을 믿지 않았어요. 신뢰도 없었고, 권한도 없이 단지 사태가 잘못되면 져야 할 책임만 제게 있었죠. 이쯤 되니 실망감을 넘어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나'하는 생각에 슬픔이 몰려왔어요."

◆이제는 시스템을 바꿔야 할 때

정 교수는 학교와 사회에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PTSD)를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PTSD 치료에는 진실과 정의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가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겪으면서 저 또한 무수한 헛소문의 주인공이 돼 있었어요. 사실 PTSD를 집단적으로 겪게 되면 생기는 현상이 편 가르기, 남의 탓으로 돌리기, 헛소문 등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봐요. 하지만 이런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이 수평적 구조의 의사소통과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해결책이 바탕이 되려면 '어떤 사실도 숨길 수 없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해요."

또한 정 교수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심리적 치료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이 PTSD가 심하게 남는 사고의 경우에는 더더욱 필요하다.

"PTSD를 겪고 있는 사람은 뇌의 상태가 항상 '생존 모드'에 맞춰져 있어요. 이성적 판단과 공감능력에 대한 부분은 작동을 멈춘 상태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도록 주변이 도와줘야 해요. 무엇이 필요한지 들어보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어느 정도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분위기상 마음의 상처가 있어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주변에서라도 너무 힘들어하면 치료를 권유하고 상담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세월호 침몰 사고 후 단원고 학생들을 위해 달려가려는 정 교수에게 "가지 마라. 가면 이용만 당하고 감당할 수 없는 책임만 잔뜩 가지고 돌아오게 된다"고 만류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 교수는 진도로, 안산 단원고로 향했다. "설령 이용당하더라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어요. 언론에서 욕을 먹더라도 내가 나서서 불합리한 법과 정책이 바뀔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뿐입니다."

※칠곡 계모 사건·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사고 등 심리상담 도맡아…소아정신과는 나의 운명

인터뷰를 시작할 때 정운선 교수는 "요즘 대구에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 자살이 점점 늘고 있는 거 아세요?"라고 물었다. 정 교수의 말에 따르면 최근 대구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일이 잦았는데, 아이들의 부모님 대부분이 소위 '사'자가 붙는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이며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대구는 아직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어른이 잘 안 보인다"며 "보수적인 대구 분위기에 시스템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처음 정신과를 지원할 때부터 소아정신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교수인 아버지와 약사인 어머니 사이에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자라온 정 교수가 소아정신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어린 시절 주변 환경의 영향이 컸다.

"제가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친척들 중에도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분들이 많았고요. 저도 슬픈데 부모님은 '가서 좋은 곳이 아니니 공부해라'면서 절 장례식장에 데려가지 않으셨어요. 그때 같이 애도하지 못한 마음의 짐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슬퍼하는 아이들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소아정신과를 지원하게 됐죠."

정 교수는 세월호 침몰 사고뿐만 아니라 아동과 청소년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사건과 사고를 겪을 때마다 그 심리치료를 위해 발벗고 나서왔다. 지난해 7월 충남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공주사대부고 학생 5명이 실종된 사건부터 지난해 12월 경북 칠곡의 아동학대사건, 올해 2월의 경북 경주의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의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심리상담을 도맡아왔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은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사고 피해자에 대한 심리상담 과정이 끝나는 날 벌어진 사건이었고 정 교수는 다음 날 바로 단원고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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