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인생의 멘토] <4>최양식 경주시장-공직 선배 정문화 전 부산시장

최 "위기 관리의 달인 바른 공직상 배워"…정 "눈빛에 총기 팍팍 큰 인물 직감"

최양식 경주시장은 공무원 초임 시절 총무처에서 만난 대선배인 정문화 전 부산시장이 올바른 공직자상을 심어준 멘토라고 말했다. 최 시장은 그와의 관계를 선배가 아닌 사제지간이나 마찬가지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공무원 초임 시절 총무처에서 만난 대선배인 정문화 전 부산시장이 올바른 공직자상을 심어준 멘토라고 말했다. 최 시장은 그와의 관계를 선배가 아닌 사제지간이나 마찬가지라며 존경심을 표했다.
총무처 시절의 최양식 경주시장.
총무처 시절의 최양식 경주시장.

최양식(63) 경주시장은 엘리트 관료 출신의 2선 단체장이다. 경주시 외동읍 제내리에서 태어나 경주중과 대구고를 거쳐 중앙대, 영국 리버풀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26세이던 1977년 제20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총무처 사무관으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총무처 인사과장, 주 영국대사관 참사관, 행정자치부 인사국장, 정부혁신본부장 등 중앙 부처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6년 행정자치부 제1차관을 역임한 후 고향으로 내려와 2008년 경주대학교 총장을 맡아 후진을 양성했다.

2010년 경주시장 선거에 도전해 민선 5기 경주시장이 됐으며, 이번에 재선 시장이 됐다. 최 시장이 모두가 선망하는 총무처로 발령을 받고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수많은 선배와 스승들이 있었다. 이 가운데 총무처 초임 근무 시절 '올바른 공직자상'을 심어주고, 지금의 그를 있게 이끌어준 정문화(75) 전 부산시장을 자신의 최고의 멘토로 여기고 있다. 정 전 시장은 총무처 차관(1990년), 부산직할시장(1993년), 15'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거쳤다.

◆깡마른 경주 촌놈이지만 큰 인물 될 줄 알아

후텁지근한 장마가 계속되고 있던 이달 17일 경주 보문단지 내 동궁원에서 최양식 경주시장과 정문화 전 부산시장이 만났다. 165㎝ 조금 못 미칠 정도의 아담한 키에 마른 체형, 연륜에서 뿜어져 나오는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 그의 첫인상이었다.

"어이구! 최 시장이 나를 멘토라고 생각하고 있는 줄 몰랐어. 이런 영광이 있나." 동궁원에 먼저 와 있던 최 시장이 "선배님 어서 오십시오" 하며 인사를 건네자 정 전 시장은 "큰 고생했다"며 한참 동안이나 뜨거운 포옹을 이어갔다. 정 전 시장은 현역 시절 총무처 차관과 15'16대 국회의원, 부산시장을 거치면서 선거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수없이 봐왔다. 그러기에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당선된 최 시장을 포옹으로 축하했다.

최 시장과 정 전 시장은 총무처 시절 하늘 같은 선배와 이제 막 행정고시를 통과한 부하 직원으로 처음 만났다. 초임시절 최 시장이 어떤 모습이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뭐 볼품이 있었겠어요. 깡마른 경주 촌놈이었지. 그런데 눈빛이 살아있었어요. 최씨 아니랄까 봐 기라성 같은 선배들 앞에서도 주눅이 드는 법이 없었습니다"라며 웃었다.

정 전 시장은 '아! 이 사람 큰 인물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유난히 일을 더 많이 시켰고, 인사'조직 분야 등 모든 일을 막힘 없이 할 수 있도록 보직을 줬다.

정 전 시장은 "그래서 최종적으로 인사 파트를 맡겼던 것"이라며 "총무처는 공무원의 승진과 전보, 연금 책정, 교육 등 공무원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곳인데, 이런 총무처의 고급 행정을 최 시장은 몸으로 익혔다"고 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최 시장이 매번 경주시의 인사를 실시하면서 큰 잡음 없이 일 처리를 해낸 것도 이때 배우고 익힌 것임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을 배울 수 있어

'작은 거인'. 최 시장은 정 전 시장을 우리나라 격동기를 온몸으로 받아낸 작은 거인이라고 표현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도 장례위원으로 현장을 지켰고, 서슬 퍼런 국보위 시절을 겪었으며, 부산시장 발령 일주일 만에 발생한 '구포역 열차 전복사고'(1993년 3월 28일 경부선 철도역인 부산시 북구 구포동 구포역 하행선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노반 침하로 전복해 사망자 78명'부상자 198명을 낸 사고) 등 국가 재난을 슬기롭게 이겨온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당시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이기백 씨가 '천하의 정문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일은 정부 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국보위 관계자들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일 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한 말이었다. 최 시장은 "당시 옆에서 정 선배님의 이런 위기관리 능력을 배웠던 터여서 마우나리조트 사건 등 지역 대형 사건을 차질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며 "이때 얻은 경험은 시정을 운용하면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현대사 격동기를 겪었던 두 사람이기에 그들의 추억은 끊이지 않는다. 박세직 씨가 총무처 장관이던 시절 이야기다. 당시 새벽 회의가 수시로 열렸는데, 최 시장이 실수로 그만 지각을 해버렸다. 주무 담당인 자신이 보고서를 만들어 주면 정 전 시장(당시 국장)이 보고를 해야 하는데, 최 시장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보고가 시작된 상황이었다.

최 시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런데 창문 너머로 정 전 시장이 종이를 들고 태연히 보고하는 모습이 보였다. 회의가 끝난 뒤 정 전 시장이 돌려준 보고서는 하얀 빈 종이였다. 백지를 들고 보고했는데 장관을 비롯해 당시 참석한 사람들이 연신 "잘했어, 열심히 했어"를 연발했던 것이다. 정 전 시장은 백지 보고에 대해 "우선 빈 종이를 들고서라도 보고하는 것은 보고받는 사람에 대한 기본예의다. 둘째는 최 시장에게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였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공직자로서 깊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선후배 사이가 아니라 사제지간

한번은 총무처 시절 한 가지 사안을 두고 부하 직원 5명이 연이어 같은 보고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정 전 시장은 한 차례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고 보고를 받았던 일도 있었다. 권위적인 시절이어서 똑같은 보고가 이어지면 "인마, 벌써 보고를 받았어" 하며 무안을 주기 십상인데 모두 처음 듣는 것처럼 끝까지 보고를 받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시장은 "부하들에게 핀잔을 주면 두 번 다시 이 같은 보고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된다"고 했다.

"저와 정 전 시장님과는 선후배 사이가 아니라 사제지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최 시장은 사석에서 아예 그를 선배가 아닌 스승으로 존경한다고 말한다. 총무처 시절 함께 생활하며 보고 느낀 정 전 시장은 사표(師表)로서 존경할 만한 분이라는 것이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총무처 생활을 함께 했고, 총무처의 국장과 총무처 차관(행정자치부 차관), 경주대학교 총장도 나란히 바통을 이어받았다.

정 전 시장은 "최 시장이 지난 4년간 많은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경주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신라왕경 복원사업과 한수원 건립 및 원전 문제 등 그의 경험과 경륜이 필요한 일들이 수두룩하다.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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