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허공장경(虛空藏經)

김사인(1956~ )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교를 중퇴한 뒤

권투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공사판 막일꾼이 되었다

결혼을 하자 더욱 어려워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떨어먹고 도로 서울로 와

다시 공사판

급성신부전이라 했다

삼 남매 장학적금을 해약하고

두 달 밀린 외상 쌀값 뒤로

무허가 철거장이 날아왔다

산으로 가 목을 맸다

내려앉을 땅은 없어

재 한 줌으로 다시 허공에 뿌려졌다

나이 마흔둘

- 2006년 3월

한 사내의 일생이 한편의 짧은 시가 되었다. 제목 '허공장경'은 사내가 죽고 그의 재가 뿌려진 허공이 종교의 경전과 같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불행했던 한 사내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이 어떻게 시가 될 수 있을까?

피상적으로 읽으면 시다운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문장이다. 특히 이 시에는 수식어가 없다. 한 사람의 생애를 뼈다귀만 앙상하게 드러내 기록했을 뿐이다. 그러나 읽고 나면 그 사내의 죽음이 온몸을 관통하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사내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노동자로 부지런히 일하며 살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병이 찾아와 짧은 일생을 마치게 된다. 사내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이승을 불행 속에 살았다. 무릇 모든 생명은 귀하다. 그럼에도 사내의 생은 귀하지 못했다. 그의 죽음은 경전이 되어 그를 불행하게 버려둔, 혹은 남은 자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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