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심후섭의 "옛날 옛적에…"] 너는 누구를 살릴래

얘야, 자기와 딸의 생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래?

몇 해 전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일이래.

"임신입니다. 축하합니다."

36살 주부인 엘리자베스는 임신을 확인하자 남편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어.

엘리자베스의 기쁨은 더욱 남달랐어.

왜냐하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허리뼈에 생긴 암 때문에 여러 번 수술도 받았고, 또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임신을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는데 정말 10여 년 만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지.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어. 석 달 정도 지나자 엘리자베스의 몸이 다시 이상해졌기 때문이었어. 암이 재발한 거야.

"다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이 아이는 어떻게 되지요?"

"네, 암 덩어리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퍼졌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전신 스캔 촬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의사는 말끝을 흐렸어.

아이의 생명은 살릴 수 없다는 것이었어.

"아, 아!"

엘리자베스는 머리를 감싸 쥐었어.

그러자 남편이 말했어.

"우선 당신이 건강해야 해. 그래야 다시 아기도 가질 수 있지."

"아니에요. 제가 살기 위해 이 아이를 버릴 수는 없어요."

엘리자베스는 자기 배를 어루만졌어.

"안 되오. 우선 당신이 먼저 살아야 해."

남편은 아내를 달래었어.

"아니에요! 이 아이도 귀중한 생명체여요. 내 귀여운 아기를 살릴래요."

엘리자베스는 끝내 아기를 살리기로 하고, 자신은 암 치료를 포기하였어.

이윽고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엘리자베스는 아기를 더 오래 자기 배 속에 둘 수 없었어. 여덟 달이 지나자 인공분만을 통해 아기를 낳고 이름을 릴리(lily)라고 지었어.

릴리는 향기 나는 백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오, 이 귀여운 릴리!"

그로부터 엘리자베스는 겨우 한 달 반만 릴리를 안아볼 수 있었어. 암이 허리에는 물론 심장과 허파에까지 전이되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 치료를 계속하기에는 너무 늦고 말았던 거야.

"릴리야, 오래오래 너를 보살펴주지 못해 미안해."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딸 릴리에게 작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어.

엘리자베스는 릴리를 안은 채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어.

그래, 정말 어머니의 사랑은 한없이 넓고 깊은 것 같구나. 자기 몸을 죽여 다른 생명을 구하거나 어진 일을 하는 것을 우리 옛 선조들은 '살신성인'(殺身成仁)이라고 하였단다. 엘리자베스가 바로 자신을 버리고 딸의 생명을 선택하였으니 살신성인을 한 것이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