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는 글쓴이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것을 읽고 생각하는 것은 나다. 나와 글쓴이 사이에는 시간과 공간의 큰 단절이 놓여 있다. 아전인수 격으로 내 멋대로 생각하면 자칫 엉뚱한 샛길로 빠져 길 잃고 헤맨다. 나와 너, 지금과 옛날 사이에 소통의 경로를 뚫어야 한다.(중략) 너와 내가 만나고 지금과 옛날이 하나가 되어야 독서의 위력은 비로소 막강해진다.(정민의 '오직 독서뿐' 중에서)
차이와 반복은 사회의 궁극적인 단위입니다. 일상적인 삶은 반복되는 상황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차이를 포함한 반복입니다. 오늘 아침이 어제 아침과 같은 모습으로 시작되지만 결코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의 색깔이 다르고, 둘러싼 풍경의 냄새도 결코 어제의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어떤 반복이든 이미 차이를 내포하고 있는 셈입니다.
고전 속에서 삶의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도 동일합니다. 고전에는 고단한 삶을 살았던 옛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고전에 담긴 삶의 흔적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차이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차이는 고전에 담긴 삶과 현재 나의 삶에 대한 냉정한 비교와 판단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그것은 질문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럴 때 독서의 위력은 막강해집니다.
독서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책 안에도, 책 바깥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다가올 시대는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시대여야 합니다. 자본을 생산하기 위한 인적 자원이 아니라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 자체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대, 어떤 풍경을 그리는 삶일지라도 삶 자체가 목적이 되는 시대,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사람에게 제공하는 시대.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구분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 줄을 세워 정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대단히 효율적인 제도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단지 평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효율성이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순서가 행복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서 다시 독서의 힘이 드러납니다.
다시 한 번 기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독서입니다. 독서는 교육의 선택지 중의 하나가 절대 아닙니다. 보편적 교육의 일환입니다. 자유로운 영토를 찾기 위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나아갈 수 있는 자유이용권입니다. 나를 준비된 사람, 가능성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단순히 공부라는 목적으로 독서를 하거나, 공부할 시간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독서를 멀리 하는 것은 모두 잘못입니다. 책을 사랑한 다음이면 몰라도 처음부터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독서는 아이들에게 독이 됩니다. 책을 오히려 멀리하게 될 테니까요. 공부할 시간을 빼앗는다는 이유로 독서를 멀리 하는 것은 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소위 교과목에만 집중한 공부는 자유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으니까요.
2000년대 초반, 학교 도서관 현대화 사업 이후 도서관은 학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10년이 흘러 리모델링이 요구되는 부분은 존재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독서정책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독서정책은 오히려 의제를 잃었습니다. 독서기록종합지원시스템으로 대변되는 독서활동의 계량화는 결국 독서를 교과 성적의 하위 개념으로 한정시켜 버렸습니다. 독서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목적인 고귀한 행위입니다. 새로운 의제는 바로 거기에 시작의 열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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