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24일에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합의하지 못하였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 부여'를 쟁점에 놓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평행선을 달리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은 또 실망하고 좌절한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적폐 해소를 위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 독립적인 권한과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대해 야당은 수사권에 대해선 찬성이지만 기소권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여당은 사법체계를 흔든다는 점에서 수사권과 기소권 모두에 반대한다. 여당의 이러한 입장에 야당은 국민 정서와 민주주의를 무기로 자신의 주장을 더 세고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대통령의 책임을 걸고넘어진다. 반대로 여당은 국회 다수파를 무기로 불신받는 검찰과 경찰 및 정부의 모습을 개선하기 위한 획기적인 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형식적인 법치주의를 주장한다.
겉으로는 여야 모두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이해관계가 다르고, 상대방이 요구하는 자신의 약점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두 한계가 많다. 물론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는지도 이해는 간다. 여야 모두 유족들의 요구 사항을 누가 얼마나 책임 있게 대변하는가와 국민 환심용이냐 진정한 국익이냐의 차이를 놓고, 7'30 재보궐 선거에서 '유권자의 편 가르기용'으로 활용하려는 동기가 있기 때문이다. 여야의 이 같은 동기를 보면, 세월호 특별법 합의는 빨라야 재보궐 선거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그러나 여야의 이 같은 태도는 또다시 유가족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국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정치 불신과 정치 혐오감을 불러일으켜 결국 '불신의 악순환 구조'라는 바다에 대한민국 전체를 빠뜨리는 '우'(愚)를 범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대재난을 두고 국민을 위로하고 통합하기는커녕, 분열과 대립하며 국민 편 가르기용으로 세월호 특별법을 활용해야 하겠는가? 이 같은 태도는 국가의 공공선과 공복임을 저버리는 전형적인 '파벌의 해악'과 같은 것이다. 당리당략은 결국 정치권에 다시 돌아가는 부메랑이란 점을 상기하고, 국민과 국가의 입장에서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원칙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국민정서를 반영하지 않는 형식적인 법치주의도 문제지만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법 위에서 국민 환심용으로 국민 정서를 이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 '다수의 지배'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의 전횡'을 견제하는 법치주의는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일치하고 갈등할 수 있다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셋째,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적대적으로 갈등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긴장관계로 전환되려면 대한민국의 정체(政體)인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이것을 법적으로 표현한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로 돌아가 쟁점 사항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들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이 단순히 '민주국'(democracy)이 아니라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일 뿐만 아니라 덕성을 갖춘 시민들이 국가의 공공업무에 참여하고 책임을 지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점에서 혼합정체이다. 혼합정체는 민주공화국의 본질로서, 평민이 중심이 되는 민주정(democracy)과 부자만을 대변하는 과두정(oligarchy)과도 다르다. 혼합정체로서 민주공화국은 국민주권론하에 의회, 대통령, 사법부, 연방제 등으로 제도화하여 권력의 분점을 통한 견제와 균형 및 공존과 공공선을 추구하는 정치체제이기 때문이다.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법적으로 표현한 헌정주의의 핵심은 삼권분립정신에 따라 헌법과 법치에 대한 최종 판단자는 입법부가 아니라 사법부라는 점이다. 따라서 여야는 국민정서를 무시하는 형식적 법치주의와 초법적인 수사권을 요구하기보다는 진상조사위와 특별검사의 권한을 분리하여 투트랙으로 운영하되 특별검사가 진상조사위원장을 겸직하는 안을 검토하여 조속한 합의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채진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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