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시끄러운 일들뿐이니 바깥으로 눈 돌릴 경황이 없다. 그런데 참사와 정쟁으로 분주한 사이 동북아에 큰 암운이 드리워졌다. 7월 1일 아베 정부는 각료회의 결정으로 평화헌법의 해석을 변경하였다. 이웃나라 헌법이 뭔 상관이겠느냐 만은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 평화유지에서 전쟁 가능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평화헌법은 67년 전 제정된 일본국 헌법 9조의 별칭이다. 영구적으로 전력 보유와 교전권을 불허하고 전쟁을 포기하는 것이 평화헌법의 요지이다. 사실 주권국가가 공식적으로 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치욕이겠으나 전범국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또한 평화헌법은 그나마 동북아의 갈등적 평화를 유지하는 한 축이었다.
헌법해석이 어떻게 바뀌었단 말인가? 요컨대 전수방위((專守防衛)가 폐기되고 집단자위권이 도입되었다. 즉 방어 목적 외에도 그리고 일본 영토 바깥에서도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범국의 결박을 벗어난 셈이다. 평화헌법 체제하에서도 이미 일본의 군사력은 세계 10위 안쪽이었다. 우려하건대 재무장과 전쟁을 향한 군국주의의 깃발이 눈에 선하다. 물론 이 같은 상상은 무모할 수 있다. 그러나 1차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다시 2차대전에서 전범국의 길을 간 전례가 있다. 더욱이 역사 교과서, 위안부, 독도 도발의 주범인 일본 극우는 동북아 분쟁의 화약고다. 양차대전의 사망자 수는 6천 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운신을 제약하는 미국 딜레마가 존재한다. 오바마 정부가 아베 정부의 결정을 '대담하고도 역사적이며 획기적인' 조치로 환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 술 더 떠 미'일 방위협력지침도 연내에 개정하겠다고 한다. 미국은 차제에 해석 변경을 헌법 개정으로 몰고 갈 공산이 크다. 대아시아 전략을 담은 아미티지 보고서는 이미 평화헌법 개정을 통한 미'일 동맹 강화를 제시해왔다. 왜냐하면 일본이 군사비와 전력의 조달자로 역할을 해줄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할진대 미국 경계 안에서 한국 정부가 제대로 목소리를 내리라는 기대는 과욕이다. 아베 정부가 평화헌법을 용도 폐기한 그날, 우리 합참의장은 한미일 3국 합참의장 회의에 참석하였다. 우습게도 동북아 군사안보 협력을 논하는 자리였다.
북한과 중국 딜레마는 어떠한가. 알듯이 북한의 핵은 동북아 평화의 최대 위협이다. 아울러 그 너머 중국은 동북아의 패권 맹주이자 북한의 유력한 후견자다. 아베 정부의 해석개헌에 우리 정부가 점잖은 목소리를 낸 것과는 달리, 북중은 가차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북한과 중국의 협력 없이 일본을 견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 예를 더 들어본다. 이달 초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의 방한을 환대한 이튿날, 아베는 각료회의를 열어 대북 제재 일부를 해제하였다. 아베의 방북 가능성도 회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중국과 통교하고 북한을 적대한 대가이다. 이렇듯 국익 앞에서는 누구와도 덜컥 손을 잡을 수 있는 복마전의 셈법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반면 우리 정부의 5'24 대북조치는 실효 없이 표류하고 있다. 물음이 든다. 우리의 길은 미국 경계인가, 통북통중(通北通中)인가, 아니면 제3의 길? 난처하기 짝이 없는 딜레마다.
이제 눈길을 다시 일본으로 돌려보자. 70 성상에 가까운 통한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언젠가는 일본도 전범국의 오명을 씻고 보통국가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동북아 평화번영 시대가 앞당겨진다. 그러나 반성을 모르는 기만적인 술책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왜 주일 맥아더 사령부의 첫 조치가 전범국 천황을 신의 권좌에서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린 것이었는지 일본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 패망 1년 전,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는 섬세한 통찰을 담은 노작 '국화와 칼'을 내놓았다. 국화는 도의(道義)와 지선(至善)의 명분을, 칼은 야만과 전쟁의 속내를 표상한다. 표리가 부동한 이중성이 일본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제 일본은 칼 대신 헌법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평화의 수식어를 단 헌법이 실은 칼보다 더한 무력이라는 것을 역사는 똑똑히 기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국화의 길인가 개헌의 길인가? 답은 명명백백하다.
장우영/대가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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