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불편한 몸으로 정신지체 아내 돌보는 김장수 씨

"내 장애·병쯤은 괜찮으니 아내 틀니라도…"

지체장애 2급인 김장수 씨는 항상 아내를 걱정한다. 아내는 정신지체장애 1급이다. 수년 동안 연락이 없는 자식들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은 기대할 수도 없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지체장애 2급인 김장수 씨는 항상 아내를 걱정한다. 아내는 정신지체장애 1급이다. 수년 동안 연락이 없는 자식들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은 기대할 수도 없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저는 괜찮은데 불쌍한 아내가 틀니를 해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었으면 좋겠어요."

지체장애 2급인 김장수(가명'75) 씨의 몸은 한 곳도 성한 데가 없다. 왼쪽 다리를 절단해 의족을 끼고 다니고 오른발은 발가락을 2개나 절단했다. 왼팔과 왼손에는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데다 오른손 손가락도 하나가 없다. 하지만 김 씨의 걱정은 항상 아내다. 정신지체장애 1급의 아내는 김 씨를 눈물짓게 한다. "해준 것도 없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마음이 아프죠. 내가 아픈 건 괜찮으니 저 사람이 틀니 하고 밥 먹는 거 보는 게 지금 소원이에요."

◆평생 따라다닌 장애와 병

김 씨는 어린 시절부터 각종 사고를 겪고 병을 앓았다. 6'25전쟁 중이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군인이 쏜 총알의 파편이 배와 왼쪽 팔꿈치에 박혔다. 파편을 빼냈지만 왼쪽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장애가 남았다. 몇 년 뒤에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입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외아들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부모님은 만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결국 입은 평생 돌아간 채였다.

농사일을 하며 지내던 30대에는 부상으로 발가락을 다친 뒤 발 전체가 썩어 들어갔고 결국 무릎 밑까지 다리를 잘라내기까지 했다. 중년이 넘어서도 김 씨는 부상과 병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사지는 성한 곳이 없다. 최근에는 척추협착증과 심한 어깨 통증까지 겹쳤다. 하지만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일가친척도 없어 기댈 사람 하나 없었다.

"평생 병원에 다니고 아팠으니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죠. 장애 때문에 약을 먹고 죽으려고까지 했지만 그때마다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났어요. 그분들 생각해서라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고요."

각종 장애 및 병과 한평생 싸워온 김 씨에게도 봄날은 있었다. 왼쪽 다리를 잘라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아내와 만난 것이다. 만날 때부터 아내는 정신지체장애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이름과 고향뿐이었다. 함께 의지하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김 씨는 아내를 받아들였고 이때부터 아내에게 김 씨는 남편이자 부모이자 친구가 됐다. "나이도 몰랐으니까요. 얼굴이 하도 어려보여서 나보다 10살쯤 어리게 호적 신고를 하고 결혼식도 올렸었죠."

만난 지 1년 만에 부부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생겼다. 김 씨에게 아들은 단순히 자식이 아니었다. 건강한 아들은 희망이었고,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자신도 남들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4년 뒤 둘째 아들까지 태어났고 김 씨는 장난감이나 생필품 등을 떼다 노점상을 했고, 아내도 이웃집에서 일을 도와주고 쌀을 얻어오는 등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불편한 몸에도 아내 걱정뿐

김 씨의 인생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두 아들의 인생 또한 아버지 못지않게 파도가 많았고, 큰아들은 15년 전쯤 집을 떠났고, 작은아들도 소식이 끊어진 지 5년째다. 김 씨의 몸은 상할 대로 상하고 나이는 70대에 들어섰지만 그가 기댈 곳은 여전히 없는 것이다.

아내와 단둘이 기댈 곳 없는 것도 서럽지만 경제적인 상황은 김 씨를 더욱 힘들게 한다. 수년 동안 연락조차 되지 않는 자식들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은 기대할 수조차 없는데 각종 수술비와 병원비는 남들보다 훨씬 많이 들어간다. 게다가 나이를 몰라 너무 어리게 호적에 등록한 탓에 아내는 65세 이상 노인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제가 호적에 써넣은 나이보다 대여섯 살은 많은 것 같은데 지금은 65세가 안 돼서 기초연금이며 의료혜택 같은 걸 하나도 못 받아요."

김 씨도 남들에게 돌봄을 받아야 할 처지지만 여전히 아내를 챙기느라 자신은 뒷전이다. 자칫 놓쳤다간 집 주소도 모르는 아내가 길을 잃을까 봐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가 하나도 없지만 아직 65세가 되지 않아 틀니 지원도 받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보건소에 자신 몫으로 나오는 틀니를 대신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아내 얘기에 눈물짓는 김 씨의 옷에는 온통 구멍이 나 있었고, 다리도 상처투성이다. 불편한 다리로 식사를 챙기고 집안 살림을 하며 무릎으로 기어다니느라 옷마다 구멍이 나고, 10년 가까이 써 여기저기 부서진 의족 때문에 다리 절단 부분 피부가 여기저기 까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김 씨의 걱정은 오로지 아내다. "이 사람 틀니만이라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잇몸으로 씹느라 피가 나면 저도 피눈물이 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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