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사진 촬영문화 거듭나야 한다

한 사진작가의 '금강송 벌목 사건'이 알려진 지 2주가 지났다. 사진 구도에 방해된다고 220년 된 소나무를 베어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그 작가는 이렇게 찍은 사진을 프랑스 파리까지 건너가 전시했다. 금강송을 세계에 알리려 했지만 한국 사진작가들의 치부(恥部)만 드러냈다. 한국 사진예술의 추락이다. 모두 속앓이를 하면서도 몰매만 던지고 또 잊힐 모양새다. 이렇게 끝난다면 한국 사진예술은 앞으로 설 자리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오판을 할 수 있다. 욕심이 앞서 양심의 눈을 감을 때도 많다. 그런데 오판이든 실수든 용인되는 범주가 있다. 사건 당사자는 나이 70이 넘은 사진계의 노장이다. 40년이 넘는 사력(寫歷)을 가진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이다. 한국사진문화상을 비롯해 국내외 수상 경력도 많은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사진을 찍겠다고 인부까지 동원해 아름드리 소나무를 잘라냈다.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는 작가의 과욕이고, 둘째는 잘못된 촬영문화에 있다. 필자도 보도사진을 20여 년 촬영해 온 경험이 있다. 고백하건대 조금 과장한다면 이 시대 대부분의 사진가는 '금강송 벌목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양심보다 욕심을 앞세운 경험이 없지 않다. 이런 촬영문화를 방조한 책임도 적지 않다. 과거보다 사진작가들의 윤리 의식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게 내세울 수준은 아니다. 한 작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할 수 없는 이유다.

당사자에게 가해지는 법적, 도의적 책임만으로 이런 행태가 사라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작품 완성도를 위해 앵글 속 '잡풀'을 정리하는 정도는 열정과 지혜의 범주로 용인된다. 결정적 순간을 위해 며칠씩 기다리는 끈기는 사진작가의 덕목으로 통한다. 문제는 '톱질' 수준의 행위가 영웅담으로 회자하는 현실이다. 겨우 눈 뜬 새 새끼를 둥지 밖에 꺼내 억지로 촬영한 사진이 버젓이 '작품'으로, '예술'로 전시장에 나오고 있다. 촬영을 마친 뒤 다른 작가들이 못 찍도록 그 아름다운 꽃을 꺾는 일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결코 예술행위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일이다.

결과를 중시하던 산업화시대의 그릇된 촬영문화다. 잘못된 관행임에도 창작의 열정으로 인정해 온 구습이다. 이런 구태를 벗지 못하면 금강송 벌목 사건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대구 동성로를 가보라. 예전처럼 담배를 물었다가는 따가운 눈총에다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세상이다. 동물을 학대하면서, 자연을 훼손하면서 예술을 논하는 시대는 지났다.

자정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으려면, 부패 사슬을 끊으려면, 세월호 특별법도 김영란법도 어떻게든 만들자는 요구와 다를 바 없다. 금강송 벌목 사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욕심을 앞세워 예술로 포장하는 모순을 바꿔야 한다. 욕심은 양심을 누를 수는 있어도 법을 이길 수는 없다.

당연히 한국사진작가협회가 나서야 한다. 한국사협은 사진예술계를 이끄는 최대 조직이다. 한국사협이 주최하는 각종 공모전은 후학을 양성하는 창구이자 사진예술의 바로미터다. 잘못된 촬영문화를 개선할 도의적 책임이 그래서 막중하다. 자연을 훼손하고 동물을 학대하며 촬영한 작품도 예술로 인정해 온 심사 잣대부터 손질해야 한다. 포토샵으로 어눌하게 조작한 작품도 대상으로 뽑는 근시안을 그대로 두고서는 추락한 위상을 되찾을 수 없다.

공모전이 기록사진을 대상으로 한다면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 안방을 떠나 대중 앞으로 나오는 순간, 한 장의 사진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군의 사진이 4'19를 부르고 부패정권 종식에 일조한 것처럼 사진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단지 작품 완성도에 집착해 사진을 조작하거나 왜곡한다면, 또 그런 사진이 여과 없이 수상작에 오르고 전시장에 나온다면 예술도 사진작가도 설 자리가 좁아진다.

작가는 남을 속일 수는 있지만 사진은 작가의 잘못된 욕심을 기억한다. 잘못된 사진문화를 기록한다. 아픈 기억을 반성하는 일은 단죄보다 대안을 찾아야 진정성이 우러난다. 그것이 적폐(積弊)를 해소하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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