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차량 차단기 '있으나마나'

자주 열어 뒤 외부 차량 마구잡이 진입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홍순규(61) 씨는 최근 새로 바꾼 차량을 타고 귀가했다. 아직 입주자 차량 등록이 되지 않아 차창을 내려 호출을 누르려는 찰나, 차단기가 자동으로 열렸다. 차단기 뒤쪽 전광판에는 차량 번호와 '방문차량'이란 글씨가 떴다. 순간 홍 씨는 석연찮았다. 미등록 차량에게도 무분별하게 차단기가 열려 아무나 주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이런 식이면 입주민은 돈 내고 주차하는데 외부인은 공짜로 주차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사는 홍소영(25) 씨는 "다른 곳에 사는 친오빠가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방문객 확인 절차 없이 열어준다고 하더라"며 "나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차단기가 열려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모든 차단기를 열어둔다.

아파트 입주민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해 단지 진입로에 설치한 주차 차단기가 경비 인력 부족 등으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아파트 주차 차단기는 단지에 출입하는 차량을 통제하고 입'출차 차량 간 안전하게 통행하기 위한 기기이다. 차량이 차단기 앞에 도착하면 RF카드나 차량번호 인식으로 등록된 입주민인지 확인해 허가된 차량이면 차단기가 열린다. 시스템 사양에 따라 비용은 3천~5천만원이다.

2일 오후 기자가 직접 달서구의 한 아파트를 방문했다. 진입로는 입주자용과 방문객용으로 분리돼 있었다. 방문객 진입로에 들어가 벨을 누르려고 차창을 내리는데 차단기가 곧바로 올라갔다. 확인 과정은 없었다. 단지 내 상가 주인은 "가게에 나올 때 보면 어쩌다 한 번씩 확인하지, 벨을 누르지 않고 그냥 열어주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불만이다. 주민 정재훈(31) 씨는 "낮에도 주차공간이 부족할 정도라 관리비 적립금 포함해서 4천만원 정도 들여서 설치한 걸로 안다. 방문객 확인도 안 할 거면서 뭐 하러 돈 써가며 설치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전 이른 시간이나 야간에 차단기를 개방해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었다. 김희정(34) 씨는 몇 달 전 오전에 아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우러 가다 사고를 당할 뻔했다. 진입로 차단기가 열려 있어 우회전으로 나가는 차가 속도를 크게 줄이지 않아서다. 그녀는 "차단기가 닫혀 있으면 차량이 잠깐 서면서 자연스레 서행하게 되고 보행자 안전도 보장됐는데 차단기가 열려 있으니까 항상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관리사무소들은 경비 인력 부족과 일부 주민들의 민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달서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은 "정문에 경비원 2명이 배정되어 있는데 1명이 16시간을 책임져야 한다"며 "혼자 근무하면서 전화를 받고 일상 업무도 하면서 방문객 확인까지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수성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도 "우리 단지의 경우, 방문객이 세대에 호출하지 않고 바로 경비실에 말하는 경우가 전체 방문객의 60%에 이른다. 이런 경우 일일이 확인하다 보면 입주민 차량이 뒤에서 대기하는 경우가 발생해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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