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쌍의 결혼식
삼거리 정자에는 청년들이 모여 장작불 위에 구운 고기냄새가 자욱하다. 간간이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미니 트럭들도 그 냄새에 흥건히 젖는다. 의자에서는 카이가 마을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있다. 고산족 마을마다 점점 자국민으로 흡수되어 가는 예순이 넘은 고산족들에게 오바또에서 매달 약간씩 돈을 나누어 주던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몇 주 전에는 1박 2일로 결혼식을 하더니, 이 집은 하루만 한다. 경제사정에 따라 다른 듯하다. 아침 시간이라 아직 사람들은 없고 신랑 엄마 홀로 마당에서 가마솥에 뭔가를 끓이고 있다. 가게에서 갓꽃을 닮은 노란 파깟을 사 신랑집으로 가니 땅바닥 포장지 위에 고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어두컴컴한 집안에 스물세 살 신랑 쏨박은 마치 외과의사처럼 고기를 손질하고 18세 신부도 그 옆에서 돕고 있다. 싸구려 타이 위스키 '용통'과 소다, 50도가 넘은 몽 위스키도 하얀색 큰 물통에 가득 담겨 있다.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모든 잡일을 도맡아 하기에 학교 소사쯤으로 생각했는데 그는 미술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어제는 인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치앙마이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마을에서 미니 트럭 4대가 가고 한 대에는 선생님들이 탔다. 그리고 오늘은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잔치를 한다.
잠시 후 신랑이 고기를 뚝뚝 썰어 신부에게 주자 그녀가 장작불 위에서 파깟과 함께 국을 끓인다. 옆에 먼저 결혼한 스무 살 동생 땡이 와 앉는다. 열여덟 살 그의 부인은 부산하며 두 살 된 아기가 칭얼거린다. 땡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는데 앞 이빨이 두 개 빠져 인물을 버렸다. 여유가 없으니 치료할 엄두도 못 내는 듯하다. 치아 균열이 와 이빨이 벌어지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 것은 단지 여유 있는 문명인의 생각일 뿐이다. 솜털이 가시기도 전에 들판으로 나가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러다 아기를 낳고 세월이 갈 것이다. 이 집 막내딸인 열살바기 실린도 신이 났다.
돼지국이 나오고 쏨박이 먼저 한 잔을 마시더니 그 잔을 나에게 권한다. 마치 독약 걱정이 많던 먼 중세 시대나, 은수저로 확인하던 옛 시대 사람처럼. 인류 최대 제국이었던 칭기즈칸 역시 독살당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직도 독한 내가 가시지 않은 술이 아침부터 목을 타고 짜르르 내려온다. 특별하게 이 집은 하객들에게 줄 선물로 컵을 준비했다. 인근 도시 람푼에서 사왔다는 컵은 우리 장마당 어디쯤 수레 위에서나 보았을 법한 것이다. 움막 같은 집 안, 그 귀퉁이에 다시 움막처럼 두 칸을 좁게 막아 부모 한 칸, 먼저 결혼한 동생 한 칸, 전등도 없는 그곳에서 산다. 아직 미혼이던 형은 부엌 땅바닥에 평상 하나 놓고 그 위에서 살았을 것이다.
단출한 세간들, 빨간 통 안에는 쓰레기처럼 어지럽게 빨래들이 쌓여 있다. 수십 년 장작불에 그을린 판잣집은 틈새들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데도 상당히 더우며 음식 냄새까지 짙게 배어 있다. 동생이 휴대폰을 스피커에 연결하자 "내 멋대로, 내 맘대로 핫~핫~" 하고 K-POP 노래가 나온다.
오후가 되자 같이 공을 차던 옆집의 18세 신랑도 건너왔다. 신부는 작은 키에 엉덩이가 툭 튀어나온 몽족 전통 체형의 17세 소녀다. 이내 새 옷으로 차려입은 신랑 둘은 마을 사람들 뒤에서 큰절을 올린다. 인사가 끝나자 잠시 돌던 술잔 하나가 버팔로잔(큰 잔)으로 바뀐다. 주인이 마을 대소사를 잘 보는 자신보다 어린 사람 앞으로 와 감사 인사를 하더니 두 명의 부인을 부른다. 역시 두 잔씩 술잔을 받더니 사양하지 않고 단숨에 마신다.
뒷마당으로 돌아가니 돼지 막에 보랏빛과 흰색이 반반씩 버무린 꽃들이 화분 속에 지천으로 피었다. 안에는 먹이를 기다리던 어미 돼지가 꿀꿀거리고 그 냄새에 섞여 짙은 꽃향기가 잘 구분되지 않는다.
◆오후 풍경
이어 청년들이 노트북과 스피커로 가라오케 시설을 만든다. 마을 학교에서 빌려온 기다란 탁자들이 놓이고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오후 4시가 넘어가자 몽족 위스키가 소주잔 하나와 그보다 작은 잔 하나에 그득 담겨 돌기 시작하고 노랫소리 울려 퍼진다. 14세 아이도, 16, 17세 아이들도 끼어 있다. 집으로 돌아가던 인근 마을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고 간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빌려온 커다란 라이트 하나가 마당 한쪽 귀퉁이에서 켜진다. 마을 어른이 술잔을 받자 신랑 둘이서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린다. 한 마디 끝나면 절을 올리고, 또 한 마디 끝나면 절을 올리는 모습이 이방인의 눈에는 참 생경하다. 보통 다리에 알이 밸 때까지 하는데 오늘은 편하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 사람의 눈빛은 한없이 순박하고 공손하다.
20여 분이나 지났을까, 이마에 흥건하게 땀이 젖고 이국인인 나에게도 와 인사를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렇게 마을 어른들에게 돌아가면서 절을 한다.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할아버지 앞으로 오자 할아버지는 허리춤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꼬깃꼬깃 접힌 지폐 몇 장을 그들의 손에 쥐여주며 한참이나 덕담을 한다. 그렇게 밤새 오지 산간마을에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10시가 넘어가자 오후쯤 오토바이 타고 아버지를 모시러 갔던 둘째 아들이 돌아온다. 이 집은 둘째 부인(자식 4명)이고, 첫째 부인(자식 6명)도 이 마을에 살며, 아버지는 지금 셋째 부인하고 치앙마이에 산다고 한다.
깊어가는 산마을, 자정이 지나가자 어린 두 신부가 연신 하품을 한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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