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겔로스(Gelos)

수년 전 미국 메릴랜드대 로버트 프로빈 교수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캠퍼스에서 웃고 떠드는 1천200명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보니 농담이나 우스운 이야기 때문에 웃는 경우는 10~20%에 불과한 반면 '만나서 반가워'와 같은 일상적 대화를 나눌 때 가장 많이 웃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친밀감이나 호감을 가진 상대와의 대화 그 자체가 즐거워 웃는 것이지, 농담 때문에 웃는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TV 프로나 코미디를 혼자 볼 때 보다는 여럿이 함께 볼 경우 30배나 더 많이 웃는다는 흥미로운 결과도 발견했다. 이를 근거로 프로빈 교수는 "웃음은 단순히 유머에 대한 생리적 반응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연관된 사회적 신호"라고 주장했다.

웃음에 관한 이런 학문적 연구를 '겔로톨로지'(Gelotology)라고 한다. 웃음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나 심리적, 생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분야다. 웃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겔로스(gelos)에서 따왔는데 'gelos'는 건강을 의미하는 'hele'(헬레)에서 파생된 어휘로 영어의 'health'(건강)의 어원이다. 웃음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짐작해볼 수 있다.

빅토르 위고는 '인간은 웃는 재주를 가진 유일한 생물'이라고 했다. 인간은 평생 50만 번 이상 웃는데 아이는 하루 평균 400번쯤, 성인은 고작 10번 남짓 웃는다고 한다. 1998년 스위스에서 열린 웃음에 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한 보고서는 1950, 60년대에 비해 독일인이 하루 웃는 횟수가 3분의 1로 줄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웃으면 안 된다"는 고위 인사의 발언 때문에 터키 사회가 시끄럽다. 뷸렌트 아른츠 부총리가 집권당 행사에서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크게 웃는 등 매력을 드러내는 일은 여성 순결에 저해되는 행동"이라고 말한 것이다. 야당은 "터키는 여성의 웃음이 필요하다"고 꼬집었고, 트위터 등 SNS에는 활짝 웃는 여성의 사진과 영상, 댓글 등이 30만 건 올라와 그의 발언을 조롱했다.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웃음은 유통기한이나 부작용이 없는 최고의 명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이런 발언이 나왔을까. 웃지 말라는 소리는 터키 여성들에게 일찍 죽으라는 것과 진배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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