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러시아 테마기행문] <3·끝>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여 안녕

인민들의 피와 땀으로 세운 공간…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도 했던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 건물도 지붕도 조각상도 곳곳이 금칠로 덮여 있다. 앞으로는 러시아가 해양으로 나가는 길목 역할을 해 온 발트해가 펼쳐진다. 웅장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늘로 솟아오르는 분수는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기도 했던 표트르 대제의 여름궁전. 건물도 지붕도 조각상도 곳곳이 금칠로 덮여 있다. 앞으로는 러시아가 해양으로 나가는 길목 역할을 해 온 발트해가 펼쳐진다. 웅장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늘로 솟아오르는 분수는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전쟁과 해양으로의 진출을 위해 네바강 하구에 세웠다는 페트로바블로스크 요새 안의 표트르 대제 좌상. 그 앞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을 위한 자세를 잡은 일행. 그의 손을 만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 탓에 양쪽 손 부분만 반질반질했다.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전쟁과 해양으로의 진출을 위해 네바강 하구에 세웠다는 페트로바블로스크 요새 안의 표트르 대제 좌상. 그 앞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을 위한 자세를 잡은 일행. 그의 손을 만지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 탓에 양쪽 손 부분만 반질반질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800㎞ 거리다. 일행은 옛 소련식 이름을 가진 레닌그라드역에서 밤 11시 30분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총 길이 약 9천400㎞의 시베리아횡단철도(Trans Siberian Railway: TSR) 중 가장 먼저 개설된 구간이다. 여수(旅愁)로 깊어가는 백야, 열차의 이층침대 차창 밖으로 자작나무가 속살처럼 허연 몸피를 드러내며 끝없이 지나간다. 무거워지는 눈거풀 끝에 푸시킨 미술관에서 본 크람스코이의 『낯선 여인』이 스친다. 톨스토이의『안나카레리나』표지 인물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여인이다.

여름날 이른 아침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상큼했다. 발트해의 핀란드만과 네바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이 도시는 18세기 초 스웨덴과의 북방전쟁을 치르면서 유럽을 향한 전초기지의 필요성을 절감한 표트르 대제가 세운 인공계획도시다. '북방의 베네치아', '유럽을 향한 창', '거룩한 베드로(표트르)의 도시' 등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수십만 명의 인민을 공포정치와 핍박으로 동원하여 만든 '인민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세운 도시'라는 가슴 시린 별칭도 있다.

젊은 시절, 신분을 숨긴 채 유럽 여러 나라에서 문명과 기술을 습득할 만큼 러시아의 유럽식 근대화를 갈망한 표트르 대제가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왕궁을 옮겨온 1712년부터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나기 전 1917년까지 200년간 로마노프 왕조의 수도였다. 역사의 부침(浮沈)에 따라 도시의 이름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페트로그라드, 그리고 레닌그라드에서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뀌었다.

제정러시아에서 소련 현재의 러시아 연방을 거쳐오는 동안 101개로 늘어난 섬과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86개의 강 사이로 모이카, 카날 그리바에도바, 폰탄카 등 아름다운 운하와 다리가 18, 19세기의 건물들을 아우른다. 약 250개의 박물관과 50개의 극장, 80개의 미술관 그중 러시아 바로크 양식의 하늘빛 양파 머리형 돔(쿠폴) 지붕과 세계에서 가장 호사스럽다는 호박 방이 있는 예까쩨리나궁, 넓은 공원에 조각상을 늘어놓은 알렉산드로 궁전, 분수가 화려한 페트로 드보레츠(표트르의 여름궁전), 문학 작가들의 아지트로 유명한 '볼리파' 찻집과 세계 유명 브랜드 상점, 고스티니드보르 백화점 등이 있는 네브스키 대로 등 도시 전체(서울의 13분의 1 크기인)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그리고 일곱 번의 폭탄 테러 끝에 결국은 살해당한 알렉산드로 2세를 기리기 위해 모스크바의 성 바실리 성당을 본떠 지었다는 피의 사원, 러시아군의 영광을 상징해 94개의 코린트양식 석고기둥 열주와 청동문이 이채로운 카잔성당, 공사 기간 40년, 동원된 인민 50만 명, 황금빛 돔을 만드는 데에 쓰인 금 100㎏, 늪지인 사원 바닥을 고르기 위한 말뚝만 2만 4천 개, 수용인원 1만6천 명을 자랑하는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성 이삭 대성당 등은 표트르 대제가 북방전쟁을 대비해 토끼섬에 지은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와 더불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가는 곳마다 경건하게 서서 기도를 드리는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곳곳에 서 있는 푸슈킨의 동상만큼 아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라는 시만큼 굳은 믿음을 얼굴에 가득 담고 사는 듯 보였다. 열정적이면서 퉁명스러운 표정에 도전적인 눈빛.

이 도시를 상징하는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고전과 퇴폐, 찬란한 아름다움과 우울함이 동시에 피고 지는 세속적인 도시'라고 표현했다. 그 말은 옳았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가 엎드려 입을 맞춘 센나야 광장을 지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필했다는 블라디미르스키 대로의 모퉁이 반지하 이층집을 찾아갔더니 그 집 창으로 도시의 그것들이 보였다.

처음엔 '큰 풀밭'이라 불렸으나 북방전쟁 승리 후 '즐거운 풀밭'으로, 다시 18세기 후반 '차르의 풀밭'으로 명명되었다가 이후 볼셰비키가 꺼지지 않는 불을 설치해 '혁명 희생자 광장'으로, 다시 '마르스 광장'으로 불리는 공원을 지나 귀족여학교였다가 볼세비키혁명 후 레닌의 혁명본부로 쓰였다는 스몰리 수도원엘 갔다. 누군가 문틈으로 들여다보았더니 의자 몇 개만 나뒹구는 텅 빈 공간이라고 했다. 차르의 전제주의 폭정에 시민들이 항거한 피의 일요일, 10월 혁명이 일어난 궁정광장에 알렉산드로 황제가 세운 십자가를 안은 거대한 천사상의 함의처럼 허무하다.

에르미타주 박물관(The State Hermitage Museum)은 서로 연결된 다섯 개의 건물이다. 지붕에 176개의 조각상을 이고 있는 겨울 궁전(동궁), 소(말라야)에르미타주, 구(스타루이)에르미타주, 신(노브이)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극장이 그것인데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런던의 대영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 1754년 엘리자 베다 여제에 의해 지어져 궁중 왕실 수집 소장품으로 미술관이 설립된 것을 시작으로 2014년 현재 350여 개의 방에 총 300만 점이 소장되어 있다.

르네상스에서 근세에 이르는 서유럽 미술 소장품들, 다빈치의 '꽃을 든 성모',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세잔의 '화병'과 마티스의 '음악'. 그리고 고갱, 고흐, 레넨, 홀바인, 피카소 등을 바람 구두를 신은 것처럼 휙휙 지나며 보았지만 신관의 말레비치와 칸딘스키와 샤갈 그리고 대부분의 마티스는 결국 시간에 쫓겨 볼 수 없었다. 정말 에르미타주를 위해서도 딱 하루가 부족했다.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이미 한 달도 더 이전에 예약이 돼 있었다.

박미영 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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