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전한 도로 행복한 교통문화] 과속과 난폭운전

시력 1.2 운전자 100km/h 달리면 시력 0.2로 '뚝'

경북 상주의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에서 과속 주행 후 급정지하는 실험을 했다. 차가 옆으로 틀어지면서 실험구간을 넘어서 멈췄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경북 상주의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에서 과속 주행 후 급정지하는 실험을 했다. 차가 옆으로 틀어지면서 실험구간을 넘어서 멈췄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과속이 불러오는 결과는 무섭다. 과속으로 일어난 교통사고 10건 중 2, 3건은 사망사고로 이어진다. 사고 발생 시 가장 높은 치사율이다. 이는 '빨리 가는 것'보다 '제 속도를 지키며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준다. 본지 기자가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를 찾아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과속이 빚어내는 위험성을 직접 체험해 봤다.

◆아찔한 과속 주행 체험

지난달 31일 기자는 경북 상주시 청리면 마곡리에 있는 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교육센터 하승우 교수와 함께 이곳 고속주행코스 앞에 섰다. 하 교수가 승용차의 운전대를 잡고, 기자는 옆자리에 함께 탔다. 실험은 속도에 따른 정지 거리. 물이 뿌려진 아스팔트를 40㎞/h, 60㎞/h, 80㎞/h 등 3단계의 속도로 달리다 정지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차 내부의 충격과 정지 거리를 측정했다. 또 마른 아스팔트를 100㎞/h로 달리다 급정지했을 때 일어나는 상황 등도 점검했다.

먼저 40㎞/h. 정지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몸은 앞으로 살짝 기울었고 차는 10m를 간 뒤 멈춰 섰다. 다음은 60㎞/h. 속도는 50%로 늘어나는 데 반해 정지 거리는 100%(2배)가 넘는 23m로 늘었다. 차는 "끽"하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밀렸고, 조수석에 앉은 기자는 안전띠가 순간적으로 가슴을 압박했다.

속도를 20㎞/h 더 높여 80㎞/h로 달리다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 머리는 좌측으로 60도가량 돌아갔고 차 내에 있던 기자의 상체는 안전벨트를 했음에도 인사를 하듯 순간적으로 앞으로 튕겨 나가 창에 부딪힐 뻔했다. 차는 50m 길이의 실험구간을 넘어 60~65m가량 미끄러지고 나서야 정지했다.

장소를 옮겨 이번에는 마른 도로를 100㎞/h로 주행하다 정지했다. 차는 40~50m나 더 가서 정지했는데, 도로 바닥엔 검은색 줄의 타이어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매캐한 고무 타는 냄새도 진동했다.

다음은 앞차 정지등에 반응하는 시간 측정. 이번에는 기자가 직접 차를 몰았다. 하 교수가 탄 차를 다른 차로에서 15~20m 간격을 두고 뒤따랐다. 속도는 50㎞/h. 세 차례에 걸쳐 앞차의 정지등에 불이 오는 것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두 번은 하 교수의 차를 앞질러 섰고, 한 번은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멈췄다. 만약 같은 차로에서 달렸다면 추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 교수는 "운전자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안전거리가 실제로는 반응시간까지 더해져 사고유발 거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과속 사고 났다 하면 생명 위험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법규 위반 유형 가운데 치사율이 가장 높다. 2011~2013년 최근 3년 동안 대구에서 발생한 과속운전 교통사고는 62건으로 이로 인해 15명(15건)이 사망, 24.2%의 치사율을 보였다. 같은 기간 경북에선 과속으로 말미암은 교통사고가 61건이 발생, 27명이 목숨을 잃어 무려 44.3%의 치사율을 보였다.

이는 치사율 2위인 불법 유턴과 중앙선 침범의 1%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과속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비록 발생건수는 적은 편이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과속 사고는 차량 흐름이 뜸한 심야에 많이 발생했다. 최근 3년(2011~2013년) 대구의 과속 사고 62건 중 48.4%인 30건이 자정에서 오전 6시 사이에 일어났다. 요일별로 보면 금요일(15건)과 일요일(14건)이 모두 46.8%인 29건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늦은 시간까지 통행량이 많은 날일수록 사고에 더 자주 노출된다.

과속 사고의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운전자의 시력이 떨어지고 시야는 좁아져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평소 시력이 1.2인 운전자가 10㎞/h로 주행하면 1.0으로 떨어지고, 30㎞/h에서 0.8, 50㎞/h에서 0.7, 100㎞/h에서 0.2까지 하락한다.

눈의 시야도 속도에 영향을 받아 40㎞/h일 때 양쪽 눈 시야가 100도 정도로 좁아지고(정상 양쪽 눈 시야 180~200도'좌'우는 각각 160도), 70㎞/h로 올리면 65도, 100㎞/h면 40도까지 시야가 협소해진다. 이 탓에 과속하면 차나 보행자 등을 미처 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고가 났을 때의 충격 강도는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서 증가하는데 속도가 높아질수록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가령 속도 50㎞/h를 기준으로 10㎞/h 늘어 60㎞/h가 되면 충격은 1.6배, 20㎞/h 올려 70㎞/h로 운행하면 2배, 갑절인 100㎞/h로 운행하다 부딪히면 충격력은 4배로 증가한다.

유럽교통안전협의회(ETSC)에 따르면 충돌 속도가 30㎞/h 이하일 때 보행자의 생존 가능성은 90%가 넘었으나, 충돌 속도가 45㎞/h 이상이면 보행자의 생존 가능성은 50% 이하로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 교수는 "운전자들은 자신이 과속 상황에서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나 제동력에는 한계가 있어 정지 거리가 생각한 것보다 길어져 사고가 일어난다"며 "단속카메라 감지기를 통한 과속 단속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과속의 위험성을 몸으로 체험하는 등의 꾸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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