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서각의 시와 함께] 내색-이규리 (1955~ )

꽃은 그렇게 해마다 오지만

그들이 웃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일로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자꾸 웃으라 했네

거듭, 웃으라 주문을 했네

울고 싶었네

아니라 아니라는데 내 말을 나만 듣고 있었네

뜰의 능수매화가 2년째 체면 유지하듯 겨우 몇 송이 피었다

너도 마지못해 웃은 거니?

간유리 안의 그림자처럼, 누가 심중을 다 보겠는가마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미소 친절' 띠를 두른 관공서 직원처럼

뭐 이렇게까지

미소를 꺼내려 하시는지

여긴 아직 내색에 무심하다

그러니 꽃이여, 그저 네 마음으로 오면 되겠다

 

-시집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4

감정노동이라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다. 서비스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본인의 감정과는 달리 고객에게 친절한 태도여야 한다. 항공기 승무원, 백화점이나 호텔 직원, 전화상담원 등이 이에 속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는 달리 늘 웃으며 친절해야 하니 힘든 노동일 것이다.

가끔 '고객님, 사랑합니다'란 전화를 받을 때가 있다. 마음에 없는 말이라는 걸 안다. 뭔가 불편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시인은 꽃도 마지못해 웃는 것이 아닌가 하고 섬세한 감성을 드러낸다. '그러니 꽃이여, 그저 네 마음으로 오면 되겠다'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시행이다.

시인 kweon51@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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