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영화 '해적' 배우 손예진

배우 손예진(32)은 수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유독 '첫사랑', '순수'의 이미지가 컸다. 다른 주제와 장르의 드라마나 영화 속 여주인공 역할도 잘 어울렸지만, 손예진이라는 이름만 놓고 본다면 '첫사랑의 이미지'가 더 강했다. 영화 '클래식'과 드라마 '여름향기' 등과 같은 작품 덕이다. 최근 '첫사랑의 아이콘'을 가수 겸 배우 수지에게 빼앗기긴(?) 했지만 손예진은 많은 남성들의 기억 속에 꽤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손예진이 바뀌었다. 액션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감독 이석훈, 이하 '해적')에서 몸을 제대로 쓴다. 제대로 된 액션은 처음이라는데 처음 같지 않다. '몸 좀 쓴다'는 대표 여배우 하지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아닐까. 스크린에 구현된 손예진의 액션은 그가 꽤 고생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원이 '해적'을 본다면 질투 날 정도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싶다.

손예진은 하지원의 반응을 묻자 쑥스러운 듯 웃었다. "영화 '타워' 때는 김지훈 감독님과 연이 있어서 지원 언니를 만나서 밥도 먹고 했는데,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질투할 정도까지는 아닐 걸요?"(웃음)

'해적' 시나리오를 받아든 손예진은 마음이 동했다. "여자 해적이 신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이야기"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 영화에 참여 안 하면 엄청나게 후회할 것 같았다"고도 했다. 영화는 조선 건국 보름 전 고래의 습격을 받아 국새가 사라진 전대미문의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찾는 해적과 산적, 그리고 개국세력이 벌이는 바다 위 통쾌한 대격전을 그린 액션 어드벤처다.

추운 날 물과 싸움해야 했고,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액션 연습을 해야 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촬영 기간 동안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다시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은 했다"고 털어놨다. "뭔가 잘못하면 민폐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해적 소단주 여월이 중요한 캐릭터인데 연습할 시간이 더 있었으면 했어요." 가뜩이나 시간이 없었는데 촬영 중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정도의 담도 걸렸다. "시간이 소중했는데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정말 답답했어요. 하루라도 더 연습을 해야 했는데, 침 맞고 마사지 받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일까. 이를 더 악물 수밖에 없었다. '악바리 근성'을 보여줬다. 김남길은 "예진 씨는 현장에서도 계속 무술 연습을 하더라. 처음 와이어 액션 연기를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라며 손예진의 액션을 향한 노력과 감각을 칭찬했었다. "액션의 묘한 매력을 느꼈다"는 손예진은 다른 액션 작품에도 은근히 욕심을 냈다. 하지만 "좀 더 액션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뒤, 다른 액션에 참여해야 할 것 같다"고 짚었다. "춥지 않은 날씨에 촬영해야 한다"는 단서 조건도 덧붙이며 배시시 웃었다. '해적'을 촬영하며 이가 덜덜거릴 정도로 추위와 싸웠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계주 선수였고 항상 체력장 1급을 따냈다"는 그는 운동 신경이 나쁘지 않은 편이고, 다이내믹한 걸 좋아한다는데 '해적' 촬영 현장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다행히 고생한 만큼 시사회 반응이 나쁘지 않아 만족스럽다.

'해적'의 관람 포인트는 웃음이다. 코믹이 무기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손예진의 액션이 안 보일 수도 있다. 고생했는데 관객이 코믹에만 집중하면 억울할 것 같다고 하니 개의치 않아 했다. 유해진과 김남길 등 배우들이 전하는 웃음만으로도 만족한다는 입장이다. 손예진은 "해적과 산적이 과하지 않게, 적당한 선에서 웃기도록 이석훈 감독님이 조절을 잘 했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좌충우돌이라고 할까요? 배우들이 다 함께 모였을 때의 케미스트리가 전해져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 웃을 일 없겠지만, 더운 여름 시원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낄낄댔으면 좋겠어요. 다행히 아직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 좋아요."

김남길과의 호흡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두 사람은 드라마 '상어'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고, 친해져 열애설까지 났던 사이. 열애설에 대해 웃어넘긴 손예진은 "후반부 내용을 처음 호흡을 맞추는 배우와 했다면 어색하고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라며 "남길 오빠는 편안했다. 평소에 워낙 웃긴 사람이다. '개그콘서트'도 만날 따라 한다니까. 이제껏 왜 실제 성격과 다른 역할을 맡았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고 웃었다.

손예진은 눈에 거슬리는 컴퓨터 그래픽(CG) 등 '해적'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감독 등 제작진을 대변했다. "부족한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할리우드나 우리나 기술은 한 끝 차이라고 하더라. 얼마나 더 많은 인력이, 비용이 들어가느냐의 차이다. 한정된 예산에서 최선이었던 것 같다"고 강조했다.

"흥행이나 시청률에 대한 부담은 있었지만 인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는 손예진. 이번 작품도 "제작비가 많이 든 작품이라 흥행에 부담은 있지만, 인지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솔직히 자신은 "인기가 거품처럼 거대해진 배우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그래서 오래가는 배우가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나이 먹은 손예진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니 "이 일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것 같다. 나중에 이모나 엄마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혼해도 아마 이 일을 계속하지 않을까?"라고 연기에 대한 자부심도 드러냈다. "팬들이 제 나이 먹은 모습을 상상하지 못할 것 같다고요? 왜요? 제 팬들도 저와 같이 나이를 먹을 텐데요. 엄마가 TV를 보면서 그런 적이 있어요. '저 배우 예전에 정말 잘 나간 사람이다'라고 했었죠. 제가 보기에는 나이 든 모습이 유독 돋보이는 분이었는데…. 물론 전 나이 먹는 건 싫어요. 정신은 그대로인데 몸만 변하는 것 같아요. 10년 후를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요? 아뇨. 전 현재만 충실해요."(웃음)

현재에 충실한 그는 '첫사랑의 아이콘'을 수지에게 빼앗긴 것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20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고, 30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으니까"라는 이유다. 그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수지 씨와는 나이 차가 좀 나잖아요. 호호호."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