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반려동물 키우기-망부석 고양이

우리집 체셔는 '참치바라기'이다. 우리 집에서 체셔의 '참치'는 단순한 생선 '참치'만 일컫는 것은 아니다. 참치 이외에 다른 생선, 또는 닭고기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들로 구성된 고양이용 통조림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곤 하기 때문이다. 참치가 주재료인 고양이용 통조림을 들고 '체셔야, 참치 먹자'라고 말하다 보니 우리 가족들에게 이젠 그냥 '참치'가 '통조림'을 지칭하는 대명사처럼 굳어진 것이다.

'참치바라기' 체셔는 마치 배꼽시계가 달린 것처럼 매일 자신이 참치를 먹는 시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아침과 저녁 식사를 할 시간보다 한두 시간 앞서서 식사시간을 기다리며, 얼른 달라며 보챈다. 묘하게도 주말 아침의 체셔는 주말 늦잠을 이해한다는 듯 평소보다 늦은 시간까지 참기도 하고 때로는 낮잠을 깊이 자느라 보채지 않는 날도 있긴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거의 늘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참치를 기다리곤 한다.

그런데 올여름이 되면서 체셔의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한낮에는 옷장 속이나 침대 위, 혹은 어두침침한 구석 등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가며 잠을 자다가 해 질 녘쯤 일어나 참치를 먹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던 체셔였는데 얼마 전부터는 아침이고, 낮이고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한 장소에서만 머무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부엌 한복판에서 말이다. 어찌된 영문인가 싶어 체셔의 움직임을 주시해 봤더니, 평소와 같이 앨리샤와 사이좋게 주식 캔을 나눠먹고 난 체셔는 사료가 있는 곳으로 향해 물을 마신 이후 어슬렁거리며 집안을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참치를 먹고 난 후에는 다음 식사시간 전까지는 부엌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렇게 부엌으로 와서는 식탁과 싱크대 사이에서 뒷다리를 쭉 뻗고 누워서는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며 말을 걸어도 감았던 눈만 살짝 떴다 다시 지그시 감을 뿐 움직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녀석을 번쩍 안아들고 거실로, 다락방으로, 사료 그릇 앞으로 장소를 바꿔가며 요리조리 옮겨 보았지만 그 즉시 녀석은 몸을 돌려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 있었던 그 자리에 다시 몸을 길게 늘인 채 엎드렸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하염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자신이 '망부석'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평소와 같지 않은 체셔를 보며 처음엔 오매불망 통조림만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녀석은 부엌에 있다가도 여느 때처럼 시간이 되면 우리에게 다가와 참치를 달라고 조르는 것은 예전과 같았으며 가족들이 잠들 시간에는 평소와 같이 우리 곁으로 와서 잠을 청했다. 게다가 참치를 먹고 난 이후에도 그 자리로 돌아가서 머물곤 하는 것을 보니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다음엔 혹시나 연로해진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어져서 저곳에서만 머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이 역시 체셔의 나이를 생각하니 아직은 그 정도는 아닐 성 싶었다.

꾸준히 그곳을 지키며 게슴츠레 뜬 눈만 껌벅이고 있는 체셔를 물끄러미 바라보다보니 그 표정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체셔의 시선을 따라 얼굴을 돌린 순간, 왠지 체셔가 그곳에서 머물고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자리에선 날씨가 좋은 날이면 체셔가 나가고 싶어서 안달 나곤 하는 바깥이 아주 잘 보였다. 게다가 너무 덥지도 않을 뿐더러 동시에 체셔를 귀찮게 하는 앨리샤가 잘 안 오는 평온한 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체셔가 홀로 조용히 낮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셈이었다. 이렇게 이곳이 체셔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갖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주게 되었다. 망부석 체셔의 명상시간을 지켜주기 위해서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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