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자 참여마당] 수필-늦깎이에 만난 나의 행복한 일터

인생이라는 열차에 내 인생을 맡기고 유년시절 20여 년을 보내고 지금의 남편과 만나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화초같이 사랑으로 보듬어 키워 교육한 보람으로 아이들은 부모 속앓이 없이 모범생으로 알토란같이 잘 성장해 국가의 부름에 응답하여 국방의 의무 다하고 의젓하게 직장 잡아 살고 있다. 결혼한 큰아들은 서울서, 작은아들 역시 직장이 서울인지라 멀리 떨어져 산 지가 어언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덩그러니 둘 만이 남은 공간. 아이들과 북적이며 살던 때보다 조용한 맛에 길들여져 살다 보니 어느샌가 찾아드는 공백의 시간들이 나날이 많아져 무료함과 나태함에 나 자신이 게으름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스컴에서는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온다고들 하는데….

그래서 뭔가를 찾아 일상을 좀 더 짜임새 있게 보낼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우연히 지나던 길에 '대구 달서시니어클럽 고령자 취업향상 프로그램 '이라는 현수막을 보았다. 그곳을 방문하여 교육 내용을 듣고 취향과 관계없이 참가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된 모양이다. 2주간 교육을 받는 동안 도움을 준 이화영 선생님의 주선으로 평리동에 위치한 대구 달서시니어클럽 소속인 토이엔시니어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교육을 함께 받으면서 친구가 된 이랑 둘이서. 그날이 2012년 7월 20일이었다.

면접대상: 만 60세 이상 건강을 유지한 상태

내용: 장난감 세척

급 여: 최저 임금에 준함.

이렇게 면접이란 걸 보고 합격을 했는지 다음 날부터 출근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친김에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근무시간이 괜찮으니 그냥 한 번 부딪쳐보자는 심정으로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다.

작업 내용들이 생각보다 터프하고 힘을 써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 버겁긴 해도 일을 하면서 얻어지는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더 많아 보람이 있다.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새싹들의 놀이기구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서 수거해 와서 분리하는 작업부터 스팀 소독할 것, 세척할 것들을 정리한다. 놀이기구에 붙은 이름표에는 예쁜 이름이 다 모여 있다. 해님반 달님반 별님반 해맑은반 지혜반 행복반 사랑반 등등.

스팀 소독하고 물 세척 깨끗이 하여 탈수한 뒤 건조실에서 잘 건조시켜 조목조목 다듬고 손질한다. 정확한 검사까지 끝낸 후 바구니에 정성스럽게 담고 가지런히 포장해 어린이집, 유치원으로 배송까지 마무리하면 끝.

때로는 현장에 나가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부착된 놀이기구나 옮기기 부담스러운 것, 깨끗한 기구 소독만을 원하는 경우다. 현장에 나가 땀 흘리며 작업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올망졸망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들으며 예쁘고 상냥한 선생님께 시원한 음료 한 잔 받아 마실 때면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서 보람이 묻어 나온다.

사실 처음에는 현장에 나가 작업하는 일을 창피하다고 꺼렸었는데 한두 번 하다 보니 지금은 재미삼아 잘 다니고 있다.

이쯤 해서 토이엔시니어의 행복한 일터 동료이자 가족 같은 구성원들을 소개할까 한다. 언제나 인품이 넉넉하시고 부드럽고 여유 있는 카리스마로 구성원들을 리드하시는 품격 있으신 김 팀장님. 기나긴 인생 여정의 다양하신 경험담을 구수하게 이야기로 풀어내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는 김 선생님. 김 선생님은 토이 식구들만큼이나 나이 들어가는 중고품 일색인 낡은 가전제품이나 기구들을 뚝딱 고쳐주는 손재주 역시 만능이시다.

이곳에 와서 칠순을 보내신 수성구 스타일의 김 언니와 동갑내기의 일명 '꽃 할매 삼총사'도 있다.

아, 대구은행에서 지원을 받아 오픈한 수성분점 식구들도 빼놓을 수 없다. 분점 책임자인 부지런하신 김 선생님과 꽃 할매 삼총사. 이렇게 모두 10명이 함께하는 토이 가족들이다.

작업 대상이 어린이집 유치원들이라 방학 때면 일손이 많이 필요해 본점에 합류하여 작업을 한다. 이렇게 짜여진 토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독특한 개성이 있어 배울 점도 많다. 늦깎이에 만난 일터인지라 나름대로 애착심도 많은 것 같다.

놀이 기구들을 정리하다 보면 감회가 새롭다. 우리 아이들 자랄 땐 만져보지 못한 멋진 장난감들이 많다는 생각에. 어쨌거나 요즈음 세상에는 아이들을 똑똑하고 영리하게 키울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여건들이 흐뭇하다. 어쩌면 장난감들이 하나같이 알록달록 색감이나 질이 좋고 다양한 디자인과 예쁜 모양들이 견고하게 잘 만들어졌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반면 어떤 곳에서는 장난감이나 놀이 기구들이 낡고 망가져 모서리가 날카롭게 찢겨 었어 마음이 아프다. 고사리같이 여린 손들이 만지고 놀기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설이 부족하고 환경이 열악한 곳은 지원이 잘 되어 이 나라의 어린이들이 편견 없는 사랑과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앞으로 좋은 환경으로 개선되리라 믿고.

그냥 하는 일이 재미가 있어 하하~~호호. 우리네 손으로 씻고 닦은 장난감들을 보고 만지며 자라는 이 아이들 속에서 훗날 대통령이 나올 수도 있고, 장관 법관 박사 의사 선생님 사장님이 될 사람도 나올 것이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훌륭하고 참신한 인재들이 되어 주리라 희망해 본다. 오늘도 이런 덕담을 주고받으며 사랑 담긴 손길로 작업에 임한다.

이 나이에 말수 없는 내 손잡아줄 사람들이 어디에 또 있을까.

대구 달서시니어클럽 관장님 이하 모든 분들께 진정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늦은 나이에 만난 일터! 소일거리가 있어 무료했던 나의 일상에 활력이 생기고 그저 세월만 삭이는 노인네가 아닌 이 나라의 일원으로서 무언가를 협력할 수 있고 나 개인으로는 작은 경제적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겨 좋다. 무엇보다도 여가 시간을 보람있게 보낼 수 있는 여건에 감사하며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일터에 오간다.

정운자(대구 달서구 상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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