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의 문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창업'을 마음 한쪽에 두곤 한다. 그러나 창업이라는 씨앗을 큰 나무로 키워내는 일은 쉽지 않다. 고정적인 수입을 포기해야 하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이겨낸 세 사람을 만났다. 창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하고 싶다'는 자신의 뜻을 따랐다는 점이다. 커피숍 창업자 이희승(29) 씨와 대구 중구청의 '2030 청년창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김다은(25), 정인희(29), 주연우(28) 씨를 만나봤다.
◆"힘들지만 긍정의 힘으로" 대구 중구청 '2030 청년창업 프로젝트' 참가 세 사람
주연우 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지 8개월이 됐다.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주 씨 앞에는 두 갈래 길이 펼쳐졌다. 하나는 중국어 특기를 살려 취직을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물건을 만들어 인터넷에 파는 일이었다. 주 씨의 마음을 당긴 건 '창업'이었다. 창업을 결심하자 '맏이'에 대한 부모님의 실망스러운 눈빛, '망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밀어닥쳤다. '젊으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현재 주 씨는 반려동물과 함께 차고 다닐 수 있는 팔찌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김다은 씨 역시 창업을 시작하는 길이 순탄치 않았다. 계명문화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뒤 1년 8개월 동안 광고 디자인 회사 등 직장 두 곳에서 일했지만 김 씨는 단 한순간도 '살아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이 늘 불만이었다. 김 씨가 창업으로 마음을 굳힌 이유였다. 패션 소품을 만들어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때를 떠올렸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 있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김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6개월 동안 본격적으로 패션 소품을 만들었다. 집에서 작업실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지만 발걸음은 늘 가볍다. 김 씨는 "회사 출근길이 고역이었던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웃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불안함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라며 입을 모았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장 크다. 아직 자리를 잡는 단계라서 수입은 미미하다. 중구청 지원금으로 작업실 이용료를 내고 나머지를 사업 밑천으로 쓰면 어느새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낸다. 아직까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는다는 김 씨는 "마음이 끌리는 일을 하면 언젠가 내가 돈을 이끌 것"이라고 믿고 있다.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 또한 이들의 고민거리다. 주 씨는 "부모님 친구분들의 자식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가족들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주 씨가 부모님께 사업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하면 부모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믿어준다.
정인희 씨는 동양화를 전공한 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창업을 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새긴 가방, 도자기, 안경 등을 만들고 있다. 정 씨는 직장 생활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친구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 역시 고민들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다 똑같이 사는구나'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긍정적인 생각'은 세 사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다. 주 씨는 "취업 시장의 문이 열리는 3월과 9월에는 불안감이 커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긍정적인 이야기들로 서로를 다독인다. 세 사람은 중구 대봉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모인다. 지칠 때면 꿈을 공유하며 장밋빛 미래를 그려본다. 정 씨는 "그래도 우리는 2030 창업 프로젝트에 합격해 나올 곳이라도 있는 게 큰 행운"이라고 말했다.
주 씨는 자서전을 쓰는 게 최종 목표다. 주 씨는 "자서전 주인공 중 누구도 평화롭게 살다가 성공한 사람이 없잖아요. 힘든 순간이 닥치면 '언젠가 쓰게 될 자서전에 또 하나의 멋진 에피소드가 만들어졌구나'라며 이겨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글 사진 김의정 기자 ejkim90@msnet.co.kr
◆"젊음이라는 확신은 있죠" 24세에 커피숍 사업 시작한 이희승 씨
요즘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이지만 5년 전 경북대 동문에는 이 흔한 커피숍 한 군데 없었다. 골목에 밥집만 줄지어 늘어서 있을 때 복사집 2층에 커피숍이 생겼다. 사장은 젊었다. 경북대 3학년 학생이 커피를 만들어 학생에게 팔았다. 바로 '커피 한 톨' 사장인 이희승 씨의 이야기다. 경북대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지만 그는 '장사'를 하고 싶었다. 대학 동기들이 하나둘씩 회사에 취직할 무렵이었다. 하지만 돈도 없고, 기술도 없었다. 이 씨는 "장사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았다. 주변 사람들한테 커피숍을 차린다고 하니까 80%는 반대하고, 20%는 해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가 커피숍 성공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3학년 1학기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출석을 부를 때마다 이 씨는 귀를 쫑긋 세웠고, 거의 모든 수업에서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경북대 동문에는 사회과학대, 경상대, 법대 등이 있는데 해가 갈수록 여학우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어요. 또 경북대 동문은 크기는 작지만 유동 인구가 많아요. 카페를 열면 장사가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돈이었다. 커피숍 창업에는 최소 3천만원이 필요했다. 20대 커피숍 사장을 보고 '집에 돈이 많은 청년'이라고 오해할 때마다 그는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 씨는 아버지에게 800만원을 빌렸다. 경영학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해 시장 상황을 SWOT 분석(강점'약점'기회'위협을 분석하는 경영 전략 기법)한 PPT를 만들었고, 아버지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부자 사이에 이뤄진 공식 발표 뒤에 아버지는 800만원이 담긴 통장을 건넸다.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오히려 장점이 되기도 했다. 이 씨는 "나머지 창업 비용은 신용보증재단에서 빌렸다. 창업 목적과 목표를 확실히 설명했고 대학생의 열정을 높이 샀는지 최대 한도로 대출받았다"고 설명했다.
창업 자금을 마련했으니 장소를 찾아야 했다. 권리금이 없는 싼 장소를 찾다가 경북대 동문 복사집 2층을 찾았다. 그는 "보증금이 모자라서 '6개월 뒤 벌어서 갚겠다'고 했는데 주인이 '한 번 해보라'며 나를 믿어줬다. 나를 믿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건물 주인에게 고마워했다. '2층 커피숍'의 지리적 단점은 커피 맛으로 극복했다. 지인의 소개로 커피 전문가에게 도제식으로 커피 교육을 받았고, 커피 맛을 알아본 단골들이 점점 늘어났다.
20대의 창업은 불확실과의 싸움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항상 생각했어요. 망할 수도 있고, 내가 가진 돈을 다 날릴 수도 있잖아요. 만약에 망하면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운이 안 좋아서 차 사고를 한 번 냈다고 생각하자'고요."
"언제가 위기였느냐"고 묻자 이 씨는 "지금이 위기"라고 답했다. 블루오션이었던 시장은 이제 레드오션으로 변했다. 5년 전 2개였던 인근 커피숍은 이 씨 가게 반경 50m 안에 5곳, 300m 안에 8곳으로 늘어났다. 버스 정류장 앞 오락실도 얼마 전 커피숍으로 변했다. 이 씨는 "장사는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대학 주변 커피숍의 특성상 학기 중에는 장사가 잘돼도 방학에는 손님이 많이 없다. 하지만 예상했던 문제"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 씨는 사람들이 박수 치고 인정해야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렵게 입학한 대학에 과감하게 자퇴서를 낸 것도 이 확신이 있어서다.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 뿌듯하고 재밌어요. 가게를 여는 것부터 커피 값, 커피 맛 등 모든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었잖아요. 지금도 손님들의 '빈 잔'을 볼 때마다 뿌듯합니다. 후회는 없어요."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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